407개 하청노조, 원청에 교섭 요구
“따로 교섭하겠다” 분리 신청 31건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10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원청교섭 쟁취 투쟁 선포대회를 열고 있다. 정효진 기자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 하청노조 407곳이 원청기업 221곳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응답한 원청은 5곳에 그쳤다. 원청이 서로의 대응을 지켜보며 교섭 공고를 미루는 ‘눈치싸움’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11일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지난 10일 오후 8시 기준 407개 하청노조가 민간 143개·공공 78개 등 221개 원청 사업장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교섭 요구에 나선 노동자는 총 8만1600명이다.
하청노조 407곳 중 357곳은 민주노총, 42곳은 한국노총 소속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하청노조 36곳(조합원 9700명)은 현대자동차·HD현대중공업·한화오션·한국지엠 등 16개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고, 건설산업연맹도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등 90개 원청을 대상으로 교섭을 신청했다. 콜센터·대학·지방자치단체 민간위탁업체·백화점·면세점·택배·우정사업본부 등에도 교섭 요구가 이어졌다.
한국노총 소속 하청노조는 쿠팡로지틱스서비스(CLS)·서울교통공사·한국철도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 등 9개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고, 미가맹 하청노조 노동자 5100명도 서울시·경기도·한국공항공사 등 3곳에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교섭 의지를 갖고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한 원청은 한화오션, 포스코, 쿠팡CLS, 부산교통공사, 화성시 등 5곳(2.3%)에 불과했다. 노조법 시행령은 ‘교섭요구를 받은 날부터 7일간’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도록 규정한다. 법 시행 첫날 대규모 교섭 요구가 접수됐지만, 대부분 사업장은 사용자성 인정 여부와 다른 원청들의 대응을 지켜보며 일단 판단을 유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고한 원청이 전부 사용자성을 인정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노동부 관계자는 “원청이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했다고 사용자성을 인정했다고 예단하기는 어렵다”며 “의제에 따라 사용자성 인정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포스코는 전날 교섭요구 사실 공고문에서 “추후 실질적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에 대해 법적 판단을 받아 교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화오션 역시 하청 급식업체 웰리브의 교섭 요구는 제외하고,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교섭 요구 사실만 공고했다.
민주노총은 “5개사의 교섭 공고는 당연한 응답”이라며 “아직도 수많은 원청이 침묵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데 지금 당장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고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개정법 시행 초기인 만큼 원청이 교섭 요구를 받은 뒤 사용자성 여부와 교섭 의제 등을 검토하는 과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하청노조와 함께하지 않고 원청과 개별 교섭하겠다며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한 노조는 31곳이다. 노동위원회는 30일 내에 원청의 사용자성을 판단한 뒤, 교섭단위 분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공공부문에서는 교섭 범위가 쟁점이 될 수 있다. 용역업체 노동자들이 지자체나 정부 부처를 상대로 임금 인상을 요구할 경우, 해당 의제가 교섭 대상인지 논란이 예상된다. 노조법 해석지침상 정부 예산으로 정해지는 노동조건은 원칙적으로 교섭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노동부 관계자는 “공공부문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경우 교섭 당사자로서 성실히 교섭에 임하고, 인정 가능성이 낮더라도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동계와 소통하고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