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지역 개신교 근대문화유산 탐방
개신교는 140여년 전 조선 땅에 첫 발을 디뎠다. 1885년 4월5일 부활절 아침. 제물포항을 통해 입국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를 시작으로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발걸음이 이어졌다. 개신교는 복음과 함께 교육과 의료, 문화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고 한반도 곳곳을 찾아다니며 이 땅의 근대화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강원도는 이같은 흐름에서 한동안 비껴나 있는 땅이었다. 태백산맥이라는 험산준령이 있었고 다른 지역과 달리 이동할 수단도 마땅찮았던터라 선교사들에겐 범접할 수 없는 땅끝같은 곳이었다.
개신교 선교 역사에서 가장 늦게 복음이 전해졌지만 이 복음은 근대화와 항일운동의 씨앗으로 뿌리내렸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지난 9~10일 이틀간 선교사들의 헌신과 이를 받아들여 주체적으로 수용한 선조들이 남긴 강원지역 개신교 근대유산을 둘러보는 답사에 동행했다.
강원도 양양에 세워진 만세운동 기념비. 박경은 기자
■근대사 아이러니의 현장 화진포
동해 최북단 강원도 고성 화진포. 맑은 물과 금강송이 둘러싼 해변은 청정 휴양지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2층짜리 석조건물이 있다. 이름은 ‘김일성 별장’.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김일성 가족이 썼다는 이 별장의 원래 이름은 ‘화진포의 성’이다. 1938년 선교사들을 위한 휴양시설로 지어진 건물로, 이를 의뢰했던 이는 결핵 퇴치 운동을 이끌었던 의료 선교사 셔우드 홀이었다. 그의 부모 역시 조선 땅에서 의료선교와 교육에 힘썼던 인물로,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은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를 길러냈다.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셔우드 홀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공부한 뒤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결핵 퇴치에 앞장섰으며 최초로 ‘크리스마스 씰’을 보급했다. 주요 활동무대는 황해도 해주였으나 선교사 지원시설인 ‘화진포의 성’을 지으며 화진포와 인연이 됐다. 이들이 남긴 삶의 흔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6월 ‘화진포의 성’에서 200m 남짓 떨어진 화진포 호수 앞에 ‘셔우드 홀 문화공간’이 문을 열었다. 어머니 로제타 홀이 썼던 일기와 편지, 어린 시절 셔우드 홀의 가족사진,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씰 등 홀 가족이 활동했던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김정석 한교총 대표회장은 “셔우드 홀의 아버지는 청일전쟁 후 부상병을 치료하다 병을 얻어 돌아가셨고 그 가족들 역시 대를 이어 헌신하셨다”면서 “한국 교회 뿐 아니라 한국 근대사에서 기억해야할 만한 소중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은 한국전쟁 뒤 남한으로 편입됐다. 천혜의 비경과 소박하고 호젓한 아름다움을 가진 이곳에 세워진 화진포의 성, 즉 김일성 별장 인근에는 이승만과 이기붕의 별장도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화진포 김일성 별장은 원래 셔우드 홀이 세운 선교사용 휴양 시설이었다. 한교총 제공
화진포호숫가에 설치되어 있는 셔우드 홀 가족 기념 포토존. 박경은 기자
■태백산맥 넘은 복음과 만세운동
다른 지역에 비해 지리적 환경이 열악했던 강원도에선 한국인 전도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를 주체적으로 수용한 한국인 조력자들은 지게에 성경을 지고 장터와 마을을 돌아다녔다. 강원도 최초의 교회로 남아 있는 춘천중앙교회(1898년)는 ‘조선의 바울’ ‘지게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었던 이덕수 전도사로부터 시작됐다.
복음전파가 늦어졌던 환경은 3·1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1919년 전국을 들끓게 만들었던 만세운동은 한달 가량 늦게 강원도에 도착했다. 당시 개신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공부하고 신앙을 받아들였던 개신교인들 상당수가 항일운동에 나섰다. 양양 현북면 만세고개에 세워져 있는 조형물은 치열했던 항일운동의 기록을 담고 있다. 양양 만세운동의 핵심 인물은 유관순의 올케이기도 한 조화벽으로, 개성 호수돈여학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뒤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 양양으로 돌아왔다. 그가 숨겨온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현지 개신교(감리교) 신자들과 지역 유림들이 함께 만세운동에 나섰다. 1만5천명이 참여한 이 운동에서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강원중앙교회에 설치되어 있는 안경록 목사 기념상. 박경은 기자
강릉의 만세운동은 강릉 최초 교회인 강릉중앙교회 안경록 목사가 구심점이 됐다. 조선총독부가 신민회와 개신교 인사 등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날조했던 일명 ‘105인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던 안목사는 교회에서 청년들과 함께 비밀리에 태극기를 그려 만세운동에 사용했다.
춘천 요선동, 소양동 일대는 당시 선교사들이 세웠던 교육, 문화시설이 밀집해 있던 곳이다. 이 일대를 내려다보는 봉의동 언덕에 일제는 신사를 세웠다. 현재 이 자리엔 세종호텔이 들어서 있으며, 출입문과 계단, 신사참배 전 손을 씻는 시설 등이 남아 있다. 교회사 연구자인 아펜젤러 인우교회 홍승표 목사는 “항일운동의 구심점이 된 개신교를 억압하기 위한 시도였다”면서 “우리 선조들은 어려움 속에서 주체적으로 신앙을 수용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자 이 땅의 주인이라는 자각을 경험했고, 그 믿음을 통해 민족을 위해 희생하고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다”고 강조했다.
셔우드 홀 선교사 가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한교총 김정석 대표회장. 한교총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