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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명예

입력 2026.03.11 20:05

수정 2026.03.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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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사랑과 명예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윤상원 열사 생가 마을에 기념관이 들어섰는데, 건축위원장을 맡아 도왔었다. 그때부터 여태껏 인연을 잇고 산다. 고인은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분. 그해 봄날 도청에서 낡은 카빈총을 들고 공수부대와 맞서 싸우다 총상을 입고 산화한 분. 전남 땅에선 보통 아이들이 수능 치고 들어가 댕기는 학교가 전남대학교. 줄여 ‘전대’라고 불러.

가끔 뵙는 광주 광산구 외딴 동네 통장님이 나를 전대 나온 고인의 후배로 알고 전대 무슨 학과 몇 학번이냐 묻덩만. “전대 아니고 서울법대 출신입니다만.” “진짜로요?” 내가 겁나게 공부를 못하게 생겼나 너무 놀라시는 눈치네. “서울에서 제법 먼 대학교요.” “오메오메 목사님이 학벌 사기를 칠라고 그라시요잉.” “다음해 재수를 해서는 서울약대에 들어갔죠.” “옴마나야 한술 더 뜨네요잉~” “서울에서 약간 먼 대학교요.” 둘이 웃고 만다. 누가 최근 서울대 계절학기, 그러니까 ‘계엄 절망 학기’를 수강했다는 학벌 사회의 씁쓸한 농담. 서울 말고 남쪽에도 사랑이 있고 명예가 있다.

학벌 사회 말고 나는 갯벌 사회. 가끔 친구들과 이른바 ‘번개’를 때려 남쪽 갯가로 달려가 갯벌에서 막 캐낸 낙지를 후룩후루룩 먹고, 또 갯벌에서 주운 백합으로 끓인 맑은 국물을 나누곤 해. 몇 학번 아니어도 능숙한 기술을 연마한 식당의 아주머니, 뚝딱 잽싸게 끓여낸 국물맛은 주린 배를 채우고 허한 심장을 데우기에 충분해. 단골집 아짐은 공장 댕기다 야학을 경험했는데, 그때 대학생 선생님을 잊지 못해. 한때 공부하고 싶어도 못한, 남동생을 위해 희생하고 공장으로 간 여성 노동자들이 많았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내어준 이들의 값진 희생과 헌신 위에 우리네 인생이 굴러가고 있다. 봄쑥을 넣은 된장 국물을 뜨다 보면 문득 그리운 당신의 이름. 떠올리지 않으면 까맣게 잊히고 말 정다운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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