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꿈꾸던 마이애미 도착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한 한국 야구대표팀의 류현진 등 선수단이 탑승한 버스가 11일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한 호텔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산수 계산’ 밀린 대만 팬들 엉뚱한 화풀이…평균 실점률 규정 탓
미 감독 “8강 확정된 줄” 이탈리아에 ‘충격패’ 탈락 위기 내몰려
기적 같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 진출 직후 대표팀 문보경이 난데없는 봉변을 당했다.
평균 실점률에서 밀려 탈락한 대만 팬들이 9회 마지막 삼진을 당한 문보경을 타깃 삼아 ‘악플’로 분풀이했다.
지난 9일 호주전, 대표팀은 9회초 안현민의 희생 플라이로 7점째를 올렸다. 더 이상 득점은 무의미했고, 후속 문보경이 ‘지능적인’ 3구 삼진으로 마지막 수비를 준비했다. 그러자 대만 팬들이 문보경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며 엉뚱한 트집을 잡은 것이다.
대만 팬들의 악플과 비난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하지만 그들의 허탈한 심정은 아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대만은 2023년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평균 실점률에 밀려 조별 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지난 대회에서 대만이 속한 A조는 5개 팀 모두 2승2패 동률이라는 초유의 결과로 끝났다. 대회 규정인 평균 실점률에 따라 쿠바와 이탈리아가 1, 2위로 8강 토너먼트에 올랐다. 대만은 앞선 대회 4강팀 네덜란드를 잡는 등 선전했지만 ‘산수’ 계산에서 밀렸다. 쿠바에 1-7로 패한 타격이 컸다.
평균 실점률 타이브레이커에 고개 숙인 사례는 대만뿐만이 아니다. 한국도 2013년 대회에서 2승1패로 네덜란드, 대만과 승패 동률을 이뤘지만 평균 실점률에서 밀렸다.
가장 크게 논란이 됐던 건 2017년 대회 멕시코였다. 1승2패로 베네수엘라, 이탈리아와 승패 동률로 공동 2위를 기록했는데 평균 실점률 계산에 따라 맨 뒤로 처졌다. 타이브레이크 경기에서 이탈리아를 꺾은 베네수엘라가 2위로 8강에 올랐다.
멕시코가 첫 경기 이탈리아전에서 ‘초 공격’이었다는 게 결과적으로 불운이었다. 멕시코는 9회말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하고 5실점 하면서 9-5로 앞서던 경기를 9-10으로 패했다. 이탈리아의 끝내기 득점이 나오는 순간 멕시코는 더 이상 아웃카운트를 잡을 기회가 없었다. 애초에 다 이긴 경기를 9회 5실점으로 내준 것부터 문제지만, 평균 실점률로 8강 진출과 탈락을 가리는 규정 자체가 도마에 올랐다. 실점을 분자, 아웃카운트를 분모로 하는데 멕시코 같은 경우 분모를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없다. 조건 자체가 공평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번 대회 한국은 반대로 9일 호주전이 ‘초 공격’이었다는 점에서 ‘말 공격’보다는 유리한 조건으로 경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8회까지 8강 진출에 필요한 점수를 못 채웠을 경우, 초 공격이라면 아웃카운트 3개가 다 잡힐 동안 계속해서 공격할 기회가 있지만, 말 공격의 경우는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 점수를 더 올릴 기회까지 사라지기 때문이다.
‘초 공격’ 기회를 안은 만큼 호주전 3실점째를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어떻게든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 분모를 키우고 마지막 공격에 가능성을 걸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11회 연장 8-3, 14회 연장 9-4 같은 8강 경우의 수 ‘번외편’이 그래서 나왔다. 비현실적인 가정이지만, 아웃카운트를 분모로 하고 실점을 분자로 하는 산수 계산만 따지면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야구 종목 특성상 어떤 식으로 타이브레이커 규정을 손본다고 해도 논란이 아주 없을 수는 없다. 득실 차가 아니라 지금의 평균 실점률이 낫다고 주장하는 쪽은 공격 기회가 서로 다른 경우 단순 득실 차로 8강 진출을 가리는 것이 더 불공평한 것 아니냐는 논리를 앞세운다. 콜드게임이 적용되는 WBC에서는 같은 경기 수라도 공격 기회에서 차이가 크게 날 수 있다.
당장 이번 대회에서는 미국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대회 주최 측인 미국도 감독이 8강 진출 상황을 착각할 만큼 WBC의 ‘경우의 수’는 복잡하다. 미국은 11일 WBC B조 조별리그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6-8로 패배했다. 천문학적 몸값을 자랑하는 메이저리거들을 내세워 세계 최강 팀을 자부하던 미국의 충격적인 패배인데, 이 패배로 미국은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몰렸다.
조별리그 일정을 마무리한 미국은 일단 자력으로 8강에 진출하는 것이 무산됐다. 미국의 2라운드 진출 여부는 12일 멕시코와 이탈리아의 경기에 달렸다. 현재 이탈리아는 3승, 미국은 3승1패, 멕시코는 2승1패다. 이탈리아-멕시코전에서 이탈리아가 승리하면, 이탈리아와 미국이 나란히 조 1, 2위로 8강에 오른다.
하지만 멕시코가 승리하면 복잡하다. 미국·멕시코·이탈리아가 나란히 맞대결에서 1승1패로 물린 3승1패가 되면서 평균 실점률로 8강 진출팀이 결정되는 상황이 된다. 이 경우 미국이 이탈리아에 8실점을 한 게 독이 될 수 있다.
11일 기준 미국이 18이닝 11실점, 이탈리아가 9이닝 6실점, 멕시코가 8이닝 5실점을 했다. 결과적으로 멕시코가 이탈리아를 상대로 4점 이하 득점으로 승리하면 미국이 탈락한다.
마크 데로사 미국 감독도 이 ‘평균 실점률 타이브레이커’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데로사 감독은 MLB닷컴 인터뷰에서 “우리는 8강 진출을 확정했지만 이상하게 이탈리아를 이기고 싶다”고 했다. 선발 라인업에서 몇몇 주축 선수를 빼는 여유도 보였다. 경기를 패한 뒤 데로사 감독은 “경우의 수 계산을 완전히 착각했다. 득점과 실점을 따져가며 계산해보면 우리가 탈락하는 상황도 있다”며 자신이 착각했음을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