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왜곡죄와 재판소원제 도입, 대법관 증원을 뼈대로 하는 이른바 ‘사법개혁 3법’이 공포된 12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관이나 검사, 수사관 등이 법을 왜곡해 적용하면 처벌하도록 한 법왜곡죄가 시행된 12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고발당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사건 등 민감한 정치 사건과 관련해 추가 고소·고발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수사·사법기관의 법 집행 과정 전반이 처벌 대상이 되면서 현장에서는 “앞으로 모든 수사나 재판을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아이에이)는 12일 조 대법원장과 박영재 대법관(전 법원행정처장)을 법왜곡죄로 처벌해 달라며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각각 고발했다. 법왜곡죄(형법 제123조의2)는 판사나 검사, 수사관 등이 남에게 이익을 주거나 해를 끼칠 목적으로 법을 왜곡해 적용하면 처벌하도록 한 규정이다. 여권이 추진한 ‘사법개혁 3법’ 중 하나로서 이날 정식 공포됐다.
이 변호사는 조 대법원장 등이 지난해 5월 대선 국면에서 이재명 대통령(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형사소송법을 고의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박 대법관은 당시 사건의 주심이었다.
이 변호사는 고발장에 “형사사건의 재판에 관여하는 법관이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재판 중인 형사사건에 관해 형소법상 서면주의 원칙이 적용돼야 할 것을 알면서도 적용하지 않았다”고 썼다. 당시 여권에선 ‘대법원이 사건 기록 수만 쪽을 다 읽어보지도 않고 판결했다’는 비판이 일었는데, 이 변호사는 이런 의혹이 법왜곡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법왜곡죄가 처음 시행된 만큼 향후 법관이나 검·경을 상대로 한 관련 고소·고발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개정 형법은 법령의 적용 요건이 충족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적용하거나 적용돼야 할 법령임을 알면서도 적용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재판·수사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나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한 경우 등을 법왜곡죄 행위에 해당한다고 정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피고인인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도 법왜곡죄로 고발될지 주목된다. 검찰은 앞서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에게 경기도가 북한 측에 줘야 할 스마트팜 사업비 500만 달러와 도지사 방북비 300만달러를 대신 내도록 했다는 혐의로 2024년 6월 기소했는데 여권에선 검찰이 이 대통령을 엮기 위해 김 전 회장을 회유하려 했다며 공소 취소 및 법왜곡죄 처벌을 주장하고 있다.
일선 수사기관과 법원 등에서는 우려가 크다. 자의적 판단이 불가피한 수사기관의 법리구성이나 법원 판결까지 모두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경찰과 검찰, 법원 모두 소극적으로 법을 집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판결은 법관의 양심에 따라서 해야 하는데 (법왜곡죄는) 외부적인 처벌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재판을 하라는 것”이라며 “극히 정치적으로 입건해서 기소를 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 그 자체가 (법관에게) 큰 위협이 된다”고 말했다.
일선 검찰청 간부도 “판결이나 수사기관 처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과거부터 직권남용과 직무유기로 수없이 판·검사를 고소해왔는데 이게 법적으로 완전히 보장된 것”이라며 “판·검사뿐만 아니라 경찰들도 업무에 소극적으로 되고 전형적인 복지부동을 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왜곡죄 고소·고발 사건을 직접 수사할 경찰은 고민이 더 깊다. 경찰은 이날 경찰관이 법왜곡죄의 수사 대상이 되거나 수사의 주체가 될 수도 있어 이 두 방향에 관한 법률 해석과 주의사항 등을 담은 지침을 일선 경찰관들에 배포하기로 했다. 다만 구체적인 사례와 판례가 전혀 없어 경찰 내부에서도 법왜곡죄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계속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