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고독한 사랑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이종필 감독의 영화 <파반느> 포스터.
2월20일 넷플릭스에 공개한 영화 <파반느>가 조용한 찬사를 받고 있다. 첫 주 글로벌 톱10 비영어권 7위로 시작해, 입소문을 타고 2주차 4위로 세 계단을 거슬러 올라 역주행을 했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서정적인 영상과 ‘파반느’라는 제목에 걸맞은 우아하고 정적인 연출이 대중의 호응을 받고 있다.
박민규의 원작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날카롭게 그려냈다. 영화의 배경은 지금에서 5년 전쯤으로 모호하게 옮겼다. 외모에 대한 낙인과 혐오가 시대를 막론하고 벌어지는 현실임을 드러낸다.
원작과 다르게, 이종필 감독의 <파반느>는 그녀가 못생겼다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 미정(고아성)의 얼굴을 이질적으로 분장하는 대신, 조명과 분위기를 통해 그녀를 감싼 그늘과 위축된 눈빛을 포착한다. 미정은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스스로 사랑하지 못해 어둡고 침울한 여자로 묘사된다. 타인의 시선에 깊이 상처받았기에 스스로 투명인간, 그림자가 되려 한다.
백화점 사람들은 미정을 ‘공룡’이라 부른다. 그들에게 미정은 실체가 있는 인간이 아니라 지워지고, 지하에 감춰져야 할 괴물이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밀어내야 할 추한 존재. <파반느>를 보면서 연상호의 영화 <얼굴>이 겹쳤다. <얼굴>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한 여성에게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혐오와 폭력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다. 영화의 마지막, 그녀의 얼굴이 사진으로 드러나는 순간 서늘해진다. 공장과 시장 사람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조롱하고 혐오하던 추한 얼굴이, 평범한 우리의 얼굴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그녀를 괴물이라 불렀을까. 타인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녀를 괴물로 만들어야 했던 것 아닐까.
<파반느>는 인물 간의 교감과 서정적 분위기를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을 은유적으로 그려낸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미정의 내면과 눈빛은 ‘못난 마음’으로 얼굴에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는 경록의 시선을 통해, 미정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빛과 그림자, 찰나의 표정을 응시하며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이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나요?’
경록이 미정을 사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핍이다. 경록은 어느 순간 자문한다. ‘나만이 진짜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내가 가짜 아닐까?’ 나 역시 가면을 쓰고 세상의 특별한 인간이 되려 발버둥 치던 것은 아닐까? 가면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날것의 상처를 드러내는 미정에게서, 경록은 자신이 잃어버린 진짜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경록과 사귀는 것을 알고 질투하며 조롱하는 여직원에게 미정은 말한다. ‘너만이 특별하다고 생각해?’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많은 이들이 ‘혐오’를 택한다. 그러나 우월함은 특별함이 아니다. 보통과 다른 자신만의 고유함이야말로 정말 특별한 무엇이고, 그것이 ‘진짜’다.
<파반느>는 누군가 바라봐줄 때 비로소 내가 존재한다는, 실존적 구원의 서사를 말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멈추지 않는다. 미정은 경록의 다정한 시선 안에서, 새로운 감옥에 갇힐 위험에 처한다. 타인의 혐오가 미정을 그림자로 만들었다면, 타인의 사랑은 그녀를 아름다운 환상 속에 가둘 수 있다. 혐오의 가면과 미화의 가면은 방향이 다를 뿐, 미정이라는 한 인간을 온전히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파반느>는 경록이라는 ‘아름다운 거울’을 내려놓고, 미정이 자신과 진정으로 마주하는 순간부터 새롭게 시작한다. 구원은 타인의 다정한 시선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시선이 닿지 않는 고독한 심연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인내에 있다. 1990년대적 낭만이 타인과의 사랑을 꿈꿨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에서 독립된 고독한 자아의 회복이다.
‘파반느’는 결국 끝난다. 타인의 시선을 위해 더 이상 춤출 필요가 없어졌음을 깨달았을 때, 그 고요한 멈춤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시작점이다. 평범한 얼굴을 마주하며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대답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