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출신 라티 쿠말라 작가가 지난 13일 서울 중구 한-아세안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한국의 독자들이 책을 통해 인도네시아 문화를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 ‘시가렛 걸’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인도네시아 역사를 이야기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작가 라티 쿠말라는 지난 13일 서울 중구 한-아세안센터에서 열린 <시가렛 걸>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12년 현지 출간된 <시가렛 걸>은 1960년대 인도네시아 전통 담배인 ‘크레텍’ 산업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남성 중심의 산업 구조 속에서 주체적인 삶을 개척한 여성 ‘정야’를 중심으로 3대에 걸친 사랑 이야기와 가문의 비밀, 인도네시아 근현대사가 맞물려 전개된다.
크레텍 담배란 연초와 향료인 정향을 2대 1의 비율로 섞고 여기에 조향제 혼합물을 첨가해 만든 궐련을 말한다. 과거에는 천식 치료제로도 쓰여 약국에서도 팔렸다. 주로 중부 자바 지방에서 소규모 업체들이 가내 수공업으로 제작한다. 작가의 할아버지도 집에서 크레텍을 만들어 팔았다. 그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집에는 정향의 냄새가 맴돌았다”고 기억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정야라는 여성이나 당시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여성은 억압받는 존재였다. 작가는 “1960년대 인도네시아에서는 남성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여성은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쳤다”며 “크레텍을 만들 때도 여성이 담배를 만들면 ‘담배 맛을 망친다’며 여성을 탓하는 사회적 문화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시가렛 걸> 표지. 한세예스24문화재단 제공.
소설은 인도네시아의 비극적 역사를 훑는다. 네덜란드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이후 겪었던 혼란기와 1965년의 반공 대학살 그리고 2000년대를 지나 변화하는 인도네시아의 모습까지 격동의 근현대사가 그려진다. 출간 이후 세계 6개국으로 번역 출간되는 등 큰 관심을 얻었다. 2023년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번 작품은 한세예스24문화재단의 동남아시아문학총서의 일곱 번째 작품으로 국내 출간됐다. 재단은 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 간 문화 교류 증진을 위해 2020년부터 동남아시아 근현대문학 출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백수미 재단 이사장은 “문학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그 나라의 숨결과 시대적 아픔을 섬세하게 풀어낸다”며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잘 담겨있는가, 국내 독자가 공감할 수 있나”를 기준으로 번역될 도서를 선정한다고 말했다. 재단은 내년에는 말레이시아의 도서를 소개할 예정이다.
이날 간담회엔 체쳅 헤라완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도 참석했다. 헤라완 대사는 “문학은 한 나라를 들여다보는 창이다. 인도네시아에도 한국 소설들이 번역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 독자들도 이번 책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정체성과 문화적 배경을 좀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