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 AP연합뉴스
‘공론장’ 개념으로 20세기 지성사에 큰 획을 그은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6세.
독일 출판사 수어캄프는 하버마스가 지난 14일(현지시간) 독일 바이에른주의 슈타른베르크에서 눈을 감았다고 가족의 말을 인용해 dpa통신 등에 전했다.
전후 독일의 ‘양심’을 형성한 철학자로 평가받은 하버마스는 의사소통, 합리성, 민주주의 이론에 관한 연구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서구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정치적 발언과 방대한 저술은 현대 사회와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를 해명하려는 시도로 읽혀 왔다.
하버마스는 1929년 6월 뒤셀도르프의 중산층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버마스의 아버지는 1933년 나치당에 가입했고, 그 역시 대부분의 독일 소년들처럼 10세 때 히틀러 유겐트 산하 조직에 가입했다. 그는 훗날 젊은 시절 나치 범죄의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경험이 없었다면 철학과 사회이론의 길로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괴팅겐, 취리히, 본 등지의 대학에서 철학·심리학·독문학·경제학 등을 두루 공부했다. 이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다, 마르크스주의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거점 프랑크푸르트사회연구소에서 1950년대부터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스승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비판 이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그는 ‘의사소통 합리성’, ‘공론장’ 개념 등을 발전시켰다. 1981년 출간된 대표작 <의사소통 행위 이론>은 현대 철학의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된다.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은 시민들이 공적 문제를 이성적으로 토론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사회적 공간이다. 그는 이 개념을 통해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한 조건을 탐구했다. 특히 18세기 유럽의 살롱과 출판문화 속에서 형성된 부르주아 공론장이 20세기 대중매체 중심의 공적 공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분석한 그의 작업은, 나치 체제 붕괴 이후 처음으로 자유로운 정치 토론을 접한 서독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버마스의 문제의식에는 그의 개인사도 배어 있다. 그는 선천성 구개열로 어린 시절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말을 또렷하게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 경험은 훗날 언어와 의사소통 문제에 천착하게 된 배경으로 자주 거론된다. 그는 구어의 중요성을 “그것 없이는 우리 각자가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는 공통성의 한 층위”로 이해했고,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애써야 했던 경험을 떠올렸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그는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수십 년 동안 현실 정치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대표적 참여형 지식인이기도 했다. 하버마스의 전기 <철학자>의 저자 필리프 펠쉬는 하버마스를 전후 독일 사회를 각성시킨 ‘대중 교육자’로 평가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하버마스는 유럽 통합을 독일 민족주의의 재발을 막는 안전장치로 보고 일관되게 지지했으며, 노년에 이르기까지 책과 신문 칼럼을 통해 공적 논쟁에 참여했다.
1980년대 이른바 독일 ‘역사가 논쟁’에서 하버마스는 핵심 논객이었다. 당시 일부 보수 성향 역사학자들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다른 정권의 폭력과 비교하며 그 특수성을 약화하려 했다. 하버마스는 역사적 과오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과거사 청산’을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독일 사회는 이러한 논쟁을 거쳐 ‘참회 문화’를 내재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버마스는 국내에서도 오래전부터 큰 관심을 받아온 사상가다. 1970년대 후반 프랑크푸르트학파가 한국에 본격 소개된 이후 그의 저작은 꾸준히 읽혔고, 1996년 4월 방한을 계기로 대중적 관심도 한층 높아졌다. 강연 내용을 묶은 <현대성의 새로운 지평: 하버마스 한국 방문 7강의>가 출간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딴 제자 송두율 독일 뮌스터 대학 교수가 200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되자 서울지법에 송 교수 석방을 위한 탄원서를 보내는 등 구명 운동에도 앞장섰다. 하버마스는 당시 “그에게 정치적 동기가 있다면 민주적 애국주의 열정일 뿐”이라며 “법치국가 원리에 어긋나 이미 낡은 것이 돼버린 국가보안법을 다시 한번 적용할 경우 공화국인 한국의 명성이 국제여론에서 큰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말년에도 현실 정치에 대한 개입은 멈추지 않았다. 다만 최근의 발언은 젊은 지식인들의 비판을 부르기도 했다. 그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군사적 대응에는 신중해야 하며 러시아와의 협상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을 낳았다. 2023년 하마스 공격 이후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이 “원칙적으로 정당하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을 잇는 후속 세대 철학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하버마스의 아내인 역사학자이자 교사 우테 하버마스-베셀회프트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은 세 자녀를 뒀으며, 이 가운데 레베카는 2023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성명에서 “그의 분석적 예리함은 국경을 훨씬 넘어 민주적 담론을 형성했고, 거친 바다 속 등대와 같은 역할을 했다”며 “그의 목소리가 그리울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