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전쟁이 세상의 종말과 같은 뜻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된장찌개에 봄나물 무침을 먹으면서 다른 나라의 전쟁‘들’을 생중계로 ‘시청’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제프리 로즈는 1992년 출판한 역작 <예방의학의 전략>에서 전쟁을 “공중보건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단언했다. 현대의 전쟁은 어느 질병보다 많이 그리고 빨리 사람들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덧붙였다. 전쟁의 바로 뒤에는 “자원과 서비스의 파괴와 해체, 그리고 피란민과 집 잃은 이들의 문제에 의한 이차적 공중보건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전쟁 준비, 무기 생산과 거래에 들어가는 비용은 주요 예방의학 프로그램을 모두 실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훨씬 초과한다”고.
로즈가 원한 것은 결코 아니었겠지만, 이 주장은 풍부한 ‘실증 데이터’를 확보하게 되었다. 2025년 12월의 유엔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의 사망자는 최소 7만명, 부상자는 17만명에 달한다. 여기에는 2만명이 넘는 어린이도 포함되어 있다. 국제학술지에 발표된 한 논문은 2024년 한 해에만 15세 미만 아동의 2~17%가 전쟁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2022년 대비 영아 사망률은 4~9배, 5세 미만 어린이 사망률은 14~34배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 공습에 의해 가자지구의 기대수명이 34년 이상 감소했을 것이라는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연구 결과도 있다.
전쟁과 인프라 파괴로 인한 피해
팔레스타인·이란 등 어린이 희생
경제적 이해득실 따지기 전에
타인의 고통에 연민 가져야 사람
폭격에 의한 직접적 인명피해만이 아니다. 깨끗한 물과 식량, 예방접종, 의료서비스 접근이 가로막히면서 생겨난 피해도 막대하다. 팔레스타인 지역 상하수도 설비 90%, 도로망 77%, 경작지 87%가 파괴됐다.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의료진 숫자가 1700명 이상이며, 가자 전역 의료기관의 3분의 1 정도만이 일부 기능을 하고 있다. 내일 당장 전쟁이 멈춘다고 해도 사회 인프라가 모두 무너지고 부모와 가족을 잃은 한 세대의 어린이들이 직면해야 하는 현실은 암울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어떤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민간인 사망자가 1만5000명, 부상자는 4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어린이 사망자도 700명 이상이다. 군인들의 피해는 국가기밀이라 정확히 알기 어렵지만, 미국 전략국제연구센터는 러시아군 최대 32만명, 우크라이나군 14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아직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이스라엘·미국의 이란 공습에서는 최소 1400명이 사망하고 1만70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여기에는 공습 첫날 초등학교에서 사망한 168명의 어린이도 포함된다. 어이없지만, 이렇게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 만드는 데에는 돈이 든다. 미국 토마호크 미사일 한 발 가격은 약 220만달러이다. 이 돈이면 미국 어린이 775명을 1년간 메디케이드에 등록하거나 3600명에게 학교급식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통계를 보고 있노라면, 보건학 연구자랍시고 그동안 건강 증진이니 공공의료 강화니 떠들었던 것이 부질없게 느껴진다. 거리의 화염 속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1계단 오를 때마다 수명 4초 up’ 같은 메시지를 정성스레 만들어내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 와중에 국내 주류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목소리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한 신문은 ‘미·이란 전쟁에 국내 방산주 동반 급등세’ 같은 기사를 내놓았고, 다른 경제신문은 ‘이른 종전 협상 소식 안 반갑네’라는 제목을 붙여서 오랜만에 급등했던 해운 주가의 하락 소식을 전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전쟁이라는 ‘투자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알려주는 현인들, 국산 무기의 놀라운 성능에 뿌듯해하는 애국자들, 미국 우파와 트럼프에 빙의한 지정학 전략가들이 넘쳐난다. 격세지감이다.
과거에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운 미국이 전쟁을 벌이는 진짜 동기, 즉 자원을 둘러싼 제국주의적 확장 전략과 군산복합체의 야욕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은 좌파의 몫이었다. 이제는 ‘맞아, 돈과 자원이 전쟁의 목적이야’라면서 사람이 죽든 말든 지정학적 파워게임과 개인의 경제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이 시대정신이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갖지 못하고, 오직 나와 우리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곳에서 인간 공동체가 존속할 수 있을까? 어떤 경제적 이득과 권력이 달려 있든, 전쟁은 그저 공중보건 재앙일 뿐이라는 점을 우리 사회가 되새겨야 한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