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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열풍의 그늘 ‘스타주 문화’

입력 2026.03.17 19:56

수정 2026.03.1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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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큰 인기를 끌었다. 셰프들의 창의성과 철학, 치열한 경쟁을 드라마처럼 담아낸 이 프로그램은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며 요리를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끌어올렸다. 대중의 미식 감수성은 한층 세련되어졌고, 셰프는 단순한 직업인을 넘어 문화 아이콘으로 재조명됐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조명 뒤에는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 최근 세계 최고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덴마크의 ‘노마(Noma)’에서 제기된 학대 의혹과 오너 셰프 르네 레드제피의 사임은 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다시 환기시켰다. 수십명의 전직 직원들은 언어적 위협과 신체적 폭력, 모욕적 통제가 존재하는 독성적 근무 환경을 증언했다. 이는 단지 한 인물의 리더십 문제라기보다 파인다이닝 산업 전반에 내재된 문화적 특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 배경에는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져온 ‘스타주(stage)’ 문화가 있다. 스타주는 젊은 요리사들이 명망 있는 레스토랑에서 무급 또는 저임금으로 일정 기간 수련하는 제도다. 실제로는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한 지위 속에서 혹독한 환경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많은 수련 셰프들은 “그곳에서 버텼다”는 경험이 향후 커리어에 결정적인 자산이 된다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고통은 일종의 투자이자 통과의례로 정당화된다.

최근의 학계 연구는 이러한 인식이 개인적 경험을 넘어 집단적 문화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영국 카디프대학교 연구진이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포함한 글로벌 파인다이닝 업계를 장기간 조사한 결과, 주방에서의 폭력적 언행과 극단적 노동 강도는 전문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고통을 견디는 능력은 실력과 인격을 증명하는 ‘경력 자본’으로 해석되었고, 비교적 안전하고 압박이 낮은 환경은 오히려 “진짜 성장이 없는 곳”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고통이 성장의 증거로 이해되는 역설적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브리게이드(brigade)’라 불리는 군대식 위계구조 속에서 더욱 강화된다. 셰프의 강한 카리스마와 절대적 권위는 주방에서의 효율성과 완벽을 위한 조건으로 간주되어왔다. 특히 강인함과 감정 억제를 미덕으로 삼는 독성적 남성성은 주방 내 폭력을 ‘엄격함’이나 ‘열정’으로 재해석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학대나 괴롭힘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문화의 일부로 일상화되었다. 이러한 환경은 성차별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파인다이닝 업계에서 여성 셰프의 비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여성에게 특히 가혹하게 작동하는 조직문화와 장시간 노동 구조가 지적돼왔다.

우리 사회에서의 미식 열풍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셰프라는 직업에 대한 존중이 확장되었고, 식문화도 훨씬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 그 관심이 접시 위의 창의성을 넘어, 주방 안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는 노동 조건과 조직문화로까지 이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의 요리를 경험하지만 이제는 그 조명 뒤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과 관계 또한 함께 바라볼 때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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