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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녹색 고양이

입력 2026.03.17 20:01

전쟁의 시대다. 지난 5년 사이 전 세계 군비 지출이 34%나 늘어났고, 전쟁을 선호하는 지도자들이 선거에서 이기는 세상이다. 전쟁이 대외 정책의 최후 수단이 아니라 가장 먼저 들이미는 수단이 되었고, 인공지능(AI)과 드론 무기 개발 등으로 공격 비용이 방어보다 훨씬 적어진 탓에, 전쟁을 일으킬 동기도 훨씬 더 커지고 있다.

기존 강대국인 미국 지배력에 도전할 만큼 신흥 강대국 중국이 부상한 탓에 전쟁 위험이 커졌다고 진단한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이를 ‘투키디데스 함정’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이란에서의 전쟁은 전혀 미·중 갈등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세계가 지금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s trap)에 빠졌기 때문일 수 있다.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는 1930년대 대공황 발생 요인을 분석하며, 글로벌 규칙 준수를 책임질 영국은 쇠퇴했으나 새롭게 부상한 미국은 책임을 떠맡으려 하지 않았던 문제를 짚었다.

킨들버거 함정에 빠지면 평화나 자유무역 같은 글로벌 공공재가 무너진다. 현재 전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관세 장벽이 높아지는가 하면, 가장 중대한 글로벌 공공재인 기후 대응이 위축되는 상황이 그 전형적 사례다. 특히 기존의 강대국 미국이 앞장서 기후 약속을 파기하는가 하면 기후 거버넌스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유럽조차 기후 대응의 진전을 망설이고 있다.

그러나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자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 1위 국가인 중국은 미국과 유럽을 대신해 기후 거버넌스를 책임 있게 이끌지는 못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오늘날 글로벌 기후 대응의 취약성을 드러낸다. 다만 중국은 최근 15차 5개년 규획을 통과시키면서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역할을 다하여, 지구 기후변화, 초국적 범죄, 사이버 보안, 중대 전염병, 테러 등 글로벌 현안에 대해 더 많은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미국의 전면적 퇴행, 유럽의 동요 양상과 달리, 중국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꾸준히 기후 대응을 진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이번 5개년 목표에서는 과거와 달리 ‘경제사회 발전의 전면적 녹색 전환’의 첫 과제로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대응을 제시했다. 얼마 전까지 온실가스 감축보다는 ‘에너지 소비 이중 통제’라는 이름 아래 에너지 효율 개선을 우선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특히 앞으로 5년은 ‘온실가스 정점 도달’과 재생에너지 전환을 통한 ‘탄소 집중도 완화’에 방점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탄소 배출 이중 통제’ 정책으로 완전히 이행한 것인데, 온실가스 정점 도달 시점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2030년 이전 달성을 전제로 한 것이다. 중국은 같은 시기 석탄과 석유 소비 정점 통과를 약속하는 한편, 녹색 공장과 탄소중립 산업단지 조성, 건물·교통 부문의 저탄소화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데이터센터와 같은 컴퓨팅 시설과 5G 통신 기지 등 첨단 분야의 에너지 효율 제고 방침까지 공식화했다.

요약하면, 중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녹색산업을 기반으로 향후 5년 내 온실가스 정점을 지나 본격적인 감축 국면으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탄소중립 산업단지 조성과 첨단 녹색산업 투자를 확대하며, 건물과 교통 부문의 전기화·효율화, 나아가 ‘녹색생활 방식’ 정착까지 서두를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시도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느냐에 따라 글로벌 온실가스 감축 경로가 얼마나 달라질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후안강 칭화대학 국정연구원 명예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 “나는 현재 중국의 발전관을 ‘제2세대 흑묘백묘론’이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며 발전을 강조했다면, 오늘날에는 ‘녹색 고양이만이 쥐를 잡으면서도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즉 발전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확실히 녹색 고양이 비유는 절묘하다. 하지만 두 가지 짚어볼 대목이 있다. 하나는 녹색 고양이가 잡아야 할 쥐는 더 이상 ‘경제 성장’이 아니라 ‘시민 복지’가 되어야 한다. 성장과 녹색을 다 잡는 녹색 고양이는 결국 허상이었음을 이미 선진국이 확인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녹색 고양이가 더 이상 중국 안의 고양이어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도전이며, 따라서 중국은 글로벌 기후 도전에 더 책임 있게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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