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이 전쟁을 선포하면, 죽는 것은 가난한 자들이다.”
소수의 권력이 전쟁을 일으키고 다수의 힘없는 사람들이 희생되는 계층의 불평등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한 격언이 또 있을까 싶다. 중동 사태가 길어지며 여러 국가에서 발표되는 군인 및 민간인들의 사상자 수가 늘고 있다. 폭격당한 모습을 담은 영상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오죽하면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를 향해 자식인 배런 트럼프를 군대에 보내라는 얘기가 SNS를 뒤덮을 정도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유조선의 발길이 끊어지며 배럴당 60달러대였던 국제유가는 며칠 사이에 100달러를 돌파해 버렸다. 원유 가격이 급등하니 덩달아 물가도 뛰고 환율도 크게 올랐다. 다시금 인플레이션 공포가 커지고 있다. 문제는 경기침체까지 겹치며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미국 해병대 역사상 가장 화려한 전공을 세운 영웅이자 퇴역 장군인 스메틀리 버틀러는 저서 <전쟁은 사기다>를 통해, 전쟁의 본질은 소수 권력자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벌이는 비즈니스라고 통렬히 비판했다. 최근 트럼프는 유가가 오르면 산유국인 미국이 돈을 버니까 좋다고 말했다. 책이 출간된 지 90년이 지난 지금도 권력자의 생각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단, 이번에는 과거처럼 기업이나 부자가 당장 큰돈을 벌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의 거대 정유사인 엑손모빌과 셰브론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양사 합쳐 원유 매장량은 300억배럴을 웃돈다. 이는 미국 정부가 보유한 전략 비축유의 70배가 넘는 막대한 양이며 유전도 안전하게 미국 본토와 아시아, 호주 등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배럴당 순수 채굴 비용이 10달러 내외에 불과하기 때문에 기름값이 오르면 돈을 벌기 좋은 구조라는 점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두 회사의 최근 주가 상승폭은 크지 않다. 판매 마진의 증가보다는 전쟁으로 인한 생산 및 물류 비용 부담과 경기침체,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으로 인한 장기적 수요 감소 가능성 등이 더 큰 우려로 작용했다.
미국의 대표 방산 기업들의 주가 또한 조용하다. 패트리엇 미사일과 아이언돔 공동 생산 기업인 레이시온테크놀로지스(RTX)와 전투기 생산 기업인 록히드마틴의 3월 주가도 박스권에 갇혀 있다. 탐욕으로 접근한 투자자라면 어쩌면 큰 실망을 했을 것 같다. ‘그동안 많이 올랐으니 뉴스에 판다’ ‘전쟁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미국 정부 예산 고갈 우려로 대규모 수주가 불확실하다’는 의견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 명분과 목적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이어서 당장 경제적 이익도 크게 못 챙긴 채 경제 환경만 악화돼 버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전쟁 시작과 동시에 정유사들의 주가가 급등 양상을 보였지만 정부가 석유사업법 23조에 명시된 석유 최고가격 지정제를 시행하기로 하면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단, 이번 전쟁에서 국산 방공무기인 천궁 2의 성능 우수성이 입증되며 관련 기업인 한화시스템과 LIG넥스원 등은 실적 증가 기대감으로 주가가 꽤 큰 폭으로 올랐다. 이렇게 타국의 전쟁으로 인해 일부 기업들이 이익을 얻을 수는 있지만 전 세계가 고환율과 고유가에 시달리게 되며 잃는 것이 더 많아졌다. 90년 전 버틀러가 외쳤던 “전쟁은 사기다”라는 일갈은 이제 “전쟁은 공멸이다”라는 비명으로 바뀌고, 그 교훈이 역사에 처절히 기록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동흠 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