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중앙은행 수장은 통상 ‘거버너(Governor)’로 표기된다. 한국과 일본은 총재(總裁)로 번역한다. 1950년 한국은행 설립 때부터 수장을 총재로 칭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1년 권위적이라는 이유로 직함을 바꾸려고 했다가 접은 적도 있다. 직함이 바뀌면 유통되는 지폐 도안도 새로 바꿔야 해 비용이 발생하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음료수 등 자동판매기도 교체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판기가 총재를 살렸다’는 우스개도 나왔다.
어느 조직보다 업무에 철두철미하고 신중한 한은맨들의 ‘총재 사랑’도 적잖이 작용했다. 그만큼 한은은 외부 변수에 의한 변화를 꺼리는 조직이기도 했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조용한 절간이란 뜻에서 ‘한은사’라는 말까지 회자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정통 한은맨이 아닌 외부 출신 총재들은 이런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다.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 김중수 전 총재는 “한은도 정부다”라며 정부와 정책 공조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창용 총재는 서울대 경제학 교수, 금융위 부위원장,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 등 학계·정책 분야를 두루 거친 자타 공인 거시경제의 최고 실력자이다. 돌아보면, 그가 이끈 4년만큼 ‘시끌벅적한 한은’은 없었다. 윤석열 내란 사태 당시엔 외신과의 적극적인 인터뷰로 우리 경제의 견고함을 합리적으로 설명했다. 정부를 향해 추경 편성을 적극 요구하기도 했다. 이 총재의 광폭 행보는 통화정책을 넘어선 논쟁적인 정책 보고서에서 절정을 이뤘다. 부모의 경제력이 대학 진학률을 좌우하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 제안이 대표적이다. 교육부는 불편해했고, ‘SKY’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외국인 돌봄 도우미 최저임금 차등적용’ ‘물가안정을 위한 농산물 수입 확대’ 등 사회 현안에 ‘불편한 대안’도 꺼리지 않았다. “출마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최초의 총재이기도 하다.
이 총재 임기 만료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후임자 인선 절차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면서 이런저런 걱정과 하마평이 무성하다고 한다. 이 총재의 연임설도 나온다. 누가 되든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자유로운 한은’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