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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부터 깨닫기

입력 2026.03.18 20:05

수정 2026.03.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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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이란 침공이 길어지고 있다. 그는 연일 호언장담을 늘어놓지만, 이란의 항전 의지만 돋울 뿐이다. 중동 전역으로 확대된 전선,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이 이란의 명징한 대답인 셈이다. 이란뿐 아니라 러시아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세계 곳곳이 화염에 휩싸이고 있는데, 기실 ‘전쟁이구나’ 실감하는 건 기름값이다. 최고가격제 덕에 그나마 주춤하지만, 주유소에 들어서며 욕 아닌 욕을 내뱉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언감생심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 김수영 시인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로 시작하는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소시민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파울 보이머는 꿈 많은 고등학생이었다. 하지만 그가 선 곳은 전장 한가운데였다. 담임인 칸토레크가 “반 친구들을 모조리 이끌고 지역 사령부에 가서 자원입대”를 시켰기 때문이다. 칸토레크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운운하며 제자들을 총알받이로 내보냈다. 소년들에게 일말의 애국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곁에 있던 친구의 죽음을 본 순간, 애국심보다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그들은 즉각적으로 깨닫는다. ‘위대한 전쟁 문학이자 반전 문학’으로 평가받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장편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한 장면이다. 작가는 전쟁 반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하지만 읽는 사람들은 안다. 제아무리 미사여구를 붙인다 해도 ‘좋은 전쟁’이란 없음을. 일말의 인간성마저 허용하지 않는 전쟁은 그 자체로 악하다.

2024년 세밑에 개봉한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최악의 내전이 벌어진 미국을 그린다. 이름도, 정당도 모르는 ‘미국 대통령’은 3선에 성공했지만, 나라는 두 쪽으로 나뉘었다. 연방정부의 폭주에 반발한 19개주는 독립을 선언하고, 친소에 따라 세력을 형성한다. 연방 충성파에 대항하는 세 개의 세력은 백악관을 향해 진격하고, 베테랑 종군 사진기자 리(커스틴 던스트) 일행은 대통령 인터뷰를 목표로 길을 나선다. 화면 속 미국은 지옥 그 자체다. 곳곳에 방탄복을 입고 각종 무기로 무장한 민병대원들이 즐비했고, 어느 편이냐 묻는 질문에 얼버무리면 즉시 사살했다. 기름값 이야기도 나온다. 리 일행이 한 주유소에 들러 “300달러에 주유하겠다” 하자, 그곳을 지키던 민병대원이 이죽거리며 말한다. “300달러면 치즈샌드위치 하나 정도는 살 수 있겠다.” 내전 발발과 함께 주유소를 힘으로 점령했을 것이 뻔한 민병대원들에게 전쟁은 장삿속과 다르지 않았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전쟁은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돌볼 수 없게 만든다.

암울한 이야기지만, 전쟁의 소문은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트럼프를 욕하지만 그보다 더 ‘악한’ 권력자가 또 고개를 들 것이다. 전쟁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 앞서 언급한 김수영 시인의 시는 작은 단서를 던진다. 마지막에 그는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라고 노래했다. 그렇다. 작은 나를 먼저 인식하면 “왕궁의 음탕”과 “언론의 자유” 등에 분개할 수도 있을 터. 하여 ‘작은 나’라는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함께 분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정치든, 전쟁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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