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가스라이팅이 아니다
이저벨 몰리 지음 | 문가람 옮김
글항아리 | 408쪽 | 2만1000원
“걔는 소시오패스였어요.” “너 그거 가스라이팅이야.”
언젠가부터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문장들을 쓰기 시작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커플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임상심리학자인 저자는 상담 현장에서 전 연인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르거나, ‘경계선 성격장애’라고 단정 짓는 이들을 숱하게 만났다. 정신건강에 대한 정보를 SNS에서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2020년대 들어 심리학 용어를 부쩍 남발하는 이들이 늘었다.
저자는 심리학 용어가 ‘무기화’되고 있다고 짚는다. 일상에서 ‘그 행동은 잘못됐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가볍게 쓰는 말들이 다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 정신의학적 진단명으로 ‘진짜’ 상대를 단정 짓는 태도는 위험하다. 그저 의견이 다른 것인데 상대가 자신을 가스라이팅한다고 믿는다거나, 감정 기복이 심할 뿐인 사람을 양극성 장애라고 지레짐작하는 게 그 예시다.
최근에는 이미 상대의 병명을 확신하고 그 추측이 맞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 상담실을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말을 듣고 만나지도 않은 누군가를 심리학적으로 진단하는 것은 부정확하고 섣부른 일이다.
반대로 스스로 심리적 문제가 있다고 과신하는 것도 문제를 낳는다. “강박장애 때문에,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때문에, 또 다른 이유로 어쩔 수 없었어…” 문제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변명으로 용어를 휘두르는 일도 적지않게 생기기 때문이다.
책은 우리가 자주 오용하는 용어의 뜻을 정확히 알려주는 실용적인 지침서다. ‘레드 플래그인가, 평범한 관계 갈등일 뿐인가?’ ‘나르시시스트인가, 표현이 서툴 뿐인가?’ 등 용어마다 병리적 증상과 아닌 것을 구분해 사례로 제시한다. 구체적 대처 방안도 일러준다. 저자는 “인간은 원래 불완전하고, 관계는 원래 어렵다”며 “진단명 붙이기 경쟁을 내려놓고 서로의 아픈 마음을 솔직히 마주하자”고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