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에서 소년보호 문제를 다룬 점은 의미가 있었지만, 소년범죄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을 점검하기보다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나이 낮추기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쉬웠다.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숙고를 요청하고 두 달의 시간을 확보해 공론화를 이끌게 된 점은 바람직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생의 형사처벌 여부를 둘러싼 논의에서 교육부 장관이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은 것은 너무 이상했다. ‘소년’이라는 두 글자만으로도 교육부가 챙길 게 많을 텐데도 그랬다.
형사미성년자 문제는 법무·검찰이 수십년 동안 반복적으로 제기해온 해묵은 쟁점이다. 연령 하향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소년범죄의 저연령화와 흉포화지만, 이는 과장된 측면이 적지 않다. 한국은 전반적으로 범죄가 감소하는 흐름을 보여왔고, 연령이나 지역을 막론하고 범죄 발생은 줄어드는 추세다. 그럼에도 검찰 등은 매번 범죄 양상이 광역화·흉포화·지능화·조직화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사실에 부합하는 건 하나도 없다. 매번 반복하는 뻔한 소리다.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지금보다 낮추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형사사건은 하나도 없다. 형사미성년자라도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면 소년원 구금 처분을 받기 때문이다. 10호 처분은 2년 동안 소년원에 가두는 무서운 처분이다. 소년원 구금 2년보다 훨씬 무거운 형벌을 매길 만한 필요가 나이를 낮추는 까닭이 될 텐데, 실제는 어떨까?
2024년에 소년원으로 보낸 13세 형사미성년자는 83명이었다. 소년원 처분 중에는 8호 처분처럼 1개월 미만 소년원 송치도 있으니, 83명 가운데 2년이 훨씬 넘는 형사처벌을 해서 그 책임을 엄히 물어야 하는 경우는 몇건 되지 않을 거다. 1년 동안 겨우 몇명, 또는 십수명에 불과한 소년들에게 형사 책임을 묻겠다고 벼르는 게 과연 온당한지, 이게 국가기관들이 나서 숙고해야 할 중요한 현안인지 모르겠다. 예전 소년보다 지금 소년들이 훨씬 성숙해졌다는 것도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 지금의 중학생들이 부모 세대나 그 앞 세대보다 덩치가 좀 커진 것 말고, 보다 성숙해졌다는 근거도 없다.
이러한 과도한 반응은 학교폭력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학교폭력이 심각하다는 사회적 공분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대응으로 이어졌고, 국가는 다양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그 안전장치들 때문에 학교 안의 사소한 다툼까지도 법적 개입이 필요한 ‘사건’으로 처리되는 경향이 생겼다. 반성과 화해, 교육적 지도는 점차 학교 현장에서 사라져버렸고, 누가 더 유능한 변호사의 도움을 받느냐는 이상한 풍토만 남았다. 그사이 교육 현장은 위축되었고, 교사의 역할 또한 축소되었다.
물론 건수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건수와 상관없이 국가가 경각심을 갖고 대비해야 할 사건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형사미성년자 나이를 낮춰야만 해결할 수 있는 심각한 사건은 1년에 한 건도 발생하지 않는다. 웹툰, 드라마, 영화적 접근이나 나이 하향을 선동하는 검찰과 일부 언론의 주장을 빼면 실제 알맹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년범죄에 대한 관심이 온통 형사미성년자 나이 문제에 가닿은 순간, 우리가 놓치는 건 너무 많다. 범죄가 꼭 소년만의 책임인지, 소년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부모와 교사, 사회의 책임은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 겨우 중학생밖에 안 된 소년들에게만 그 책임을 묻는 것이 타당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소년범을 형사처벌할지 소년부 송치로 소년보호시스템을 적용할지를 정하는 지금의 대응체계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소년범에게 어떤 처분을 할지를 정하는 ‘분류’ 작업은 제대로 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간판은 무슨 무슨 ‘학교’라고 내건 소년원이 교육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소년이 범죄와 단절하고 건강하게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은 얼마나 실효적으로 진행하고 있는지도 챙겨야 한다.
형사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경미사건까지 잔뜩 끌어모아 엄청 심각한 상황이 있는 것처럼 과장하면서 형사미성년자의 나이를 낮추자는 선동은 그만둬야 한다. 교정이나 소년보호나 모두 범죄자의 책임을 엄하게 묻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재범을 방지하고 원활한 사회 복귀를 돕는 게 핵심이다. 감옥이나 소년원에 보내는 까닭, 그 목적과 원칙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직 멀었다. 한참을 더 가야 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