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 등 독립운동가부터 이순재, 김새론씨 등 연예인까지 세상을 떠난 인물들을 이용한 인공지능(AI) 콘텐츠가 범람하면서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AI 기술이 대중화하면서 고인의 사진으로 누구나 동영상 등을 만들 수 있는데 이를 유족 동의 없이 수익 활동에 사용하고, 심지어 고인을 모욕하는 일까지 벌어지기 때문이다.
19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유튜브 등 SNS에서는 손쉽게 고인을 활용한 모욕적 영상 콘텐츠를 찾아볼 수 있다. 논란이 됐던 유 열사의 영상에서 열사는 방귀를 뀌거나, 로켓과 합성해 날아간다. 유튜브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조롱하며 그가 바위 위에 문재인 전 대통령과 올라서 웃는 영상도 게시돼 있다. 최근 미국에서도 흑인 인권운동가 고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거 구호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영상이 온라인에 게시돼 논란이 됐다.
물론 고인을 희화화하고 모욕한 영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에 노 전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영상은 제작 목적을 ‘기술 시연’이라고 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배우 이순재씨와 김새론씨, 2017년 고인이 된 배우 김주혁씨가 등장하는 추모 영상엔 이들의 몸에 천사 날개를 달았다.
문제는 영상 제작자들이 고인을 악의적으로 이용해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고인을 모욕하는 표현물은 형법상 사자명예훼손죄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은 ‘허위의 사실을 적시했을 경우’에 적용된다. 허위의 사실이 아닌 조롱이나 욕설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이런 모욕적 표현은 현행 모욕법으로 처벌해야 하는데 죽은 사람을 향한 표현은 대상이 아니다.
고인 활용 콘텐츠로 발생한 수익을 제작자가 챙긴다는 점도 문제다. 모욕·추모 등 제작자의 의도를 불문하고 고인 활용 콘텐츠는 조회수 등에 따라 수익이 발생한다. 유족은 자신의 가족 등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간 법원은 ‘사람의 초상(얼굴) 등을 경제적 목적으로 이용할 독점적 권리’를 판례를 통해 인정해왔다. 2022년 6월에는 유명인에 한해 이를 명문화해 인정하는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그러나 이 법도 고인의 권리를 따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한국 정부는 2022년 미국 등의 선례를 참고해 인격표지영리권(퍼블리시티권)이라는 이름으로 이 권리를 명시하는 민법 개정을 시도했다.당시 법무부 입법안은 사람의 초상 등을 영리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사망한 뒤에도 상속돼 30년간 존속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런 입법이 만평 등 유명인의 얼굴을 이용한 비판·패러디 등을 어렵게 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등의 지적이 뒤따랐고, 입법 논의는 중단됐다.
신종범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변리사)는 “고인 활용 콘텐츠로 수익을 얻고 있다면, 대법원판결이나 명확한 법적 근거는 없지만 유족들이 부정경쟁방지법 등을 유추해 법원에 손해배상을 청구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법이 미처 예정(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법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망자에 대한 모욕적 콘텐츠 규제도 입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영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특임교수는 “고인을 이용한 콘텐츠를 초상권·퍼블리시티권·저작권 등 어떤 권리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지부터 따져봐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추모와 수익 창출 등 목적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를 포함해 법제가 기술 발전을 따라갈 수 있도록 포괄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