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대전 대덕구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에서 22일 경찰과 소방, 고용노동부, 국과수 등 관계자들이 합동 조사를 하고 있다. 대전 l 문재원 기자
대형화재로 74명의 사상자를 낸 대전 자동차 부품 업체 안전공업을 과거 방문했던 의사들이 화재 현장에 유증기가 가득해 건강 등 우려가 컸다고 지적했다. 과거 이 공장에서 일했던 종사자들도 화재 위험이 크다는 우려를 직장인 커뮤니티 등에 다수 남겼다.
특수검진을 위해 이 공장을 여러 차례 방문한 적 있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A씨는 22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절삭유를 스프레이 형태로 사용하는 공장 중에서도 유독 바닥에 절삭유가 심하게 묻어나고 냄새가 심해서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A씨는 “헬스장에서 검진을 했던 것 같은데 창문이 없어서 불이 났을 때 탈출도 어려웠을 것 같다”고 말했다. 헬스장은 이번 화재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장소로, 건물도면상에도 존재하지 않아 불법 증축 의혹이 제기돼 있다.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B씨도 “현장에 항상 오일미스트가 뿌연 정도로 보였고, 4시간 정도 검진하면 안경에 기름이 묻어나올 정도였다”며 “철제 계단 손잡이에 오일미스트가 이슬처럼 맺혀서 뚝뚝 떨어지기 직전 상태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방문할 때마다 2020년대에 어떻게 이렇게 오일미스트가 자욱한 상태로 공장이 운영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보면, 2023년 안전공업에서 일했다고 밝힌 C씨는 “폐 질환과 폭발화재 등 사고가 빈번한, 목숨을 담보로 하는 생산활동이 너무 불안하다”는 글을 남겼다. C씨는 이직 사유로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현장에 날리는 오일미스트의 불안감에 퇴사함”이라고 적었다.
과거 안전공업에서 일했다는 D씨는 지난 21일 블라인드에 “절삭유가 증기 형태로 작업장 전체에 퍼져 있었다”고 적었다. 그는 “퇴근하고 나면 안경 렌즈에 기름막이 낄 정도였고, 작업 중에는 호흡기로 계속 흡입되는 정도의 환경이었다”며 “실내 환기가 충분하지 않았고, 여러 번 개선 건의를 했지만 비용 부담 등 이유로 실제 조치까지 이어지지 않았다”고 썼다.
안전공업에 근무하던 E씨는 지난 1월 기업정보 플랫폼 ‘잡플래닛’에 “현장에 유증기 기름 범벅에 절삭유 찌꺼기가 판을 친다”는 글을 썼다. 지난해 6월 글을 남긴 직원 F씨는 “기름 증기 등 나쁜 환경에서 다니다 보면 건강이 악화하는 게 느껴진다”고 적기도 했다. 2024년 8월에도 “환경이 너무 안 좋고 개선 의지가 있으나 위쪽에서 막는 느낌이 강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의사와 종사자들이 언급했던 안전공업의 환경은 급격한 연소확대의 이유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점화원 관리, 가연성 물질이 많은 환경 등 다양한 화재 확산 요인들이 있어 특정 요소를 지목하기는 어려운 단계지만, 유증기나 기름이 많은 환경도 여러 확산 요인들 중 하나로 기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남득우 대덕소방서장도 “가공 공정에서 절삭유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기름때가 많다”며 “미상의 원인으로 발생한 불이 그걸 타고 순식간에 연소 확대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오후 1시17분쯤 발생한 대전 안전공업 화재로 14명이 죽고 60명이 다쳤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자세한 화재 원인 등을 조사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