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대전 대덕구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에서 22일 경찰과 소방, 고용노동부, 국과수 등 관계자들이 합동 조사를 하고 있다. 대전 l 문재원 기자
정부의 ‘산재와의 전쟁’ 기조에도 불구하고 대전 안전공업 참사가 발생하면서 화재에 취약한 화학물질을 다루는 기업들의 화재 대응 체계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특히 2024년 23명의 사망자를 낳은 아리셀이 영세업체였던 것에 비해, 안전공업은 설립 73년된 매출액 1300억원대의 중견급 규모의 기업으로, 화재 위험에 사전에 대비할 여력이 있었는데도 소홀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등록된 안전공업 감사보고서를 보면, 회사는 자동차와 선박용 엔진밸브의 제조·판매를 주 사업 목적으로 1953년 설립됐다.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 업체와 선박 및 산업용 엔진 생산업체에 제품을 엔진 조립용(OEM)으로 공급하고 있다.
2024년 12월 기준 고용된 노동자는 364명, 매출액은 1351억원이다. 지난해 ‘자동차의 날’ 행사에서는 국내 최초로 하이브리드 차량용 중공밸브 국산화에 성공해 연 1000억원 이상 수출한 공로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통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안전관리 체계를 갖출 규모와 여력이 있는 사업장으로 평가된다. 한국노총 등에 따르면 이번 참사로 사망한 노동자 14명 중 정규직은 11명, 계약직 2명, 영업직 1명으로 추정된다.
2024년 6월 2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친 아리셀 참사는 배터리 폭발로 화재가 나면서 유독가스와 비상구 미비, 공장건물의 불법 구조변경 등이 피해를 키웠다. 이번 화재 역시 비상 대피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창문을 통해 노동자들이 뛰어내리는 등 대피가 어려웠다.
2024년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일차전지 제조 공장 아리셀에서 화재가 발생, 소방대원들이 화재진압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아리셀과 안전공업 모두 리튬과 나트륨 등 화학물질을 다루는 제조업체라는 점도 닮았다. 아리셀의 리튬 일차전지는 물을 부으면 오히려 기름을 붓듯 화재를 악화시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안전공업에서 취급하는 나트륨 역시 물이 닿으면 폭발 위험성이 있다. 이때문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안전보건이 전반적으로 취약하지만 특히 화학물질 관리가 취약하다”며 “이를 적정하게 관리하지 못했을 수 있고, 나트륨을 지나치게 의식해 공정 전반에서 스프링클러 등 물을 너무 멀리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밀폐된 작업 환경과 환기 부족, 가연성 물질 축적이 결합될 경우 화재는 순식간에 확산될 수 있는데, 이러한 상황을 가정한 대응 체계와 훈련이 충분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강 교수는 “급속도로 불이 번지는 상황에서 비상대응이 늦는다”며 “싱가포르나 대만 등에서는 비상상황에서 10~15분 내로 대피 장소에 다 모이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훈련을 잘 하지 않는다. 평소 비상 대응 훈련을 제대로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면서 노동계는 보다 강력한 처벌과 실효성 있는 집행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대전본부는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사후약방문식 대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현장 참여를 실질화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취지를 살려 엄중하게 사업주를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우리 산업현장의 안전이 여전히 얼마나 취약한지를 다시 한번 드러낸다”면서 “위험요인을 방치한 책임을 끝까지 묻는 것과 동시에 정부와 기업이 산업현장의 안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해야 하고, 중대재해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