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언론윤리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 기자가 시사평론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대통령 최측근이 고위 검사들과 공소취소를 두고 뒷거래를 시도했다고 폭로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즉각 논쟁이 일었다. 출처를 밝혀야 한다, 진행자도 책임이 있으니 사과해야 한다, 심지어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저마다 윤리적 판단을 내놓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기준과 추론 근거는 제시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애초에 이 사안은 언론윤리와 무관한 정치적 사건일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검찰개혁 입법을 앞두고 여권 내 파벌 간 힘겨루기가 벌어졌고, 그것이 우연히 해당 유튜브 채널에서 표면화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합동토론회에서 예비후보들이 문제의 유튜브 채널 진행자의 사과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 사과 요구는 어느덧 여권 내 파벌을 가르는 일종의 ‘십자가 밟기’처럼 활용되고 있다.
정파적 분별이나 갈라치기에 대해서는 따로 덧붙일 말이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언론윤리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정치적 뒷거래 폭로의 정당성과 방법의 절차성이라는 중요한 언론윤리 사안을 앞에 두고도, 성찰적 담론은 보이지 않고 정치적 해석만 넘쳐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그렇다.
만약 이 사태가 언론윤리 위반에 대한 것이라면 지금 우리 언론인은 각자 윤리적 책임의 주체로서 어떤 내적인 압박감을 느껴야 한다. 내가 몸담은 언론이라는 윤리 공동체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당혹스러움, 부끄러움, 또는 분노감을 동반한 책임 인식을 가져야 한다.
당신이 언론인으로서 이런 압박감이나 인식을 갖지 못한다면, 다음 둘 중에 하나다. 우리 언론이 아직 윤리 공동체로서 성립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당신이 언론이란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거나.
윤리적 위반은 실제 그 일이 터진 뒤에야 평가되는 사안이 아니다. 언론이 윤리 공동체라면 ‘그래서는 안 되지’, ‘기자로서 그걸 빠뜨릴 수 없지’, ‘내 책임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와 같은 판단이 거의 자동으로 내부에서 작동한다.
윤리 공동체의 일원이란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하는 규범이 언론계에 실재하고 작동한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비록 그 규범을 명료하게 문장으로 엮어내지는 못할지언정 말이다.
윤리적 주체는 때로 차별적이고 배제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는 신입 기자의 실수나 베테랑 기자의 과오를 엄하게 처벌하는 우리 언론의 관행과는 다른 문제다. 언론은 ‘기자답지 않은 기자’를 규정함으로써 스스로 그 경계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실상 언론이 발전한 나라들의 역사를 보면, 언론은 결국 정부나 정당의 이념이나 책략과 명목적으로 구별되는 (기능적으로는 구분되지 않을 수 있다) 명분들을 채택하면서 독자적인 제도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기자 중 누가 정치인처럼 책략을 꾸미고 행동하는지’를 가려내고 배제하는 과정 속에서 기자의 정체성이 형성된 것이다.
결국 기자만이 스스로를 윤리 공동체로 만들 수 있다. 누구도 기자를 대신해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어떤 훌륭한 이념을 갖춘 정치인이라고 해도, 어떤 타당한 이론을 주장하는 철학자라고 해도 기자를 대신해서 언론윤리를 규정할 수 없다.
심지어 전직 기자라 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전직 기자가 대필하거나 대행하는 정치 연설이나 기업 홍보야말로 언론윤리 공동체가 가장 경계하고 저항해야 마땅한 유사언론이다. 어쩌면 윤리란 그러한 유사언론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