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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이냐 자유냐

입력 2026.03.25 19:54

방탄소년단 공연에 동원된 공무원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경찰관 6700명, 서울시 2600명, 소방 800명, 서울교통공사 400명 등 1만명 넘는 공무원이 ‘안전’을 명분으로 현장에 배치됐다. 적절한 계획이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누가 봐도 과도한 인력 투입과 통제였지만 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는 목소리에 머뭇거리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우리는 모두 10·29 이태원 참사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인권활동가들과 나눴던 고민이기도 하다. 당일 경찰은 안전관리를 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112를 통해 신고가 접수돼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었던 때에도 긴급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경찰의 부재가 너무나 선명했지만 경찰은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했다. 분노가 치밀다 보니 더 일찍, 더 많은 경찰이 투입됐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서로 물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핼러윈데이를 맞은 이태원 골목마다 경찰들이 늘어서 시민을 통제하는 것일까?

이태원 참사 이후 알려진 사실은 이렇다. 2005년 상주에서 11명이 압사로 숨진 참사 이후 경찰은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을 운영해왔다. 2014년 개정된 매뉴얼은 “다수의 인파가 모이는 행사에선 사소한 계기에 의해서도 급박한 혼란 상태가 발생하거나 사망자 발생 등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명시했다.

2022년 10월 중순 열린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 경찰은 인력을 투입해 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했다. 보름 정도 지난 핼러윈데이에는 안전관리 업무를 배치하지 않았다. 많은 인파가 운집할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자료가 확보된 2017년 이래 경찰이 핼러윈데이에 경비 인력을 투입한 것은 2020년과 2021년 두 해뿐이었다. 코로나19 방역이 목적이었다. 경찰은 인파 밀집 상황에서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일로 여긴 적이 없었다. 매뉴얼이 알려주는 ‘행사’ 관리만 해온 것이다. 그전에도 방탄소년단 공연에는 경찰이 대규모로 배치됐다. 시민의 안전관리는 몰라도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는 늘 움직이고 있었다.

얼마 전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청문회가 열렸다. 증인으로 출석한 당시 서울청 경비부장은 대비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전까지 경비부서 업무가 아니었다”는 점을 들었다. 한 적 없어서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른 경찰들의 답변도 매한가지였다. 참사가 발생할 수 있음을 예상하지 못했다거나, 자신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거나 하는 내용이었다. 요약하면 하던 대로 했다는 말이다.

지난 주말 방탄소년단 공연에서 경찰의 계획은 인파 운집 상황에서의 안전관리 계획과는 달랐다. ‘광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펜스로 출입구를 제한했다. 압사에 이를 수 있는 군중 눌림 현상이 좁은 통행로로 인파가 집중될 때 발생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섬뜩한 일이다. 경찰도 알 것이다. 행사 인원에 비해 출입구 수가 부족하지 않은지 점검해 최대한 많은 출입구가 개방되도록 하는 것이 행사 관리 매뉴얼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테러에 대비한다는 이유를 댔다. 테러 대비가 대규모 인력 투입으로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만약 작은 폭발 사고라도 있었다면 더욱 위험했을 상황이다. 실제로 공연이 끝난 후 제한된 출구 주위로 병목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긴급하게 대피해야 했다면 경찰이 세운 펜스 자체가 위험 요소가 될 것이었다.

공연 이후 논란에 대해 서울경찰청장은 “시민 안전과 관련해선 과도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순간을 번번이 놓쳤던, 아무런 대비도 대응도 하지 않았던 경찰이 반성한 결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경찰이 이태원 참사로부터 하나도 배우지 못한 증거로 보였다. 경찰은 하던 대로 했고 ‘무엇을 위해서’라는 질문은 여전히 없다. ‘안전’을 ‘통제된 상태’로만 여기는 한 그대로일 것이다.

안전은 권리다. 안전사고로부터 보호할 책임을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통제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더 자유롭게 이동하기 위해서, 더 즐겁게 놀기 위해서, 더 마음 놓고 일하기 위해서 안전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것이다.

안전이냐 자유냐 묻지 마라. 기업 앞에서는 규제보다 자유를 먼저 떠올리고, 사람 앞에서는 자유보다 통제를 먼저 떠올리는 국가는 인간의 권리를 지운다. 안전공업 화재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안전을 권리로 명시하며 국가 책임을 밝히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 더는 미뤄지지 않아야 한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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