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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흰 물줄기…조선 강산에 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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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그 첫 번째 주인공은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다.

'박연폭포'는 그동안 좀처럼 공개되지 않았던 개인 소장품으로 겸재 정선을 집중 조명한 초대형 전시인 2025년 호암미술관 특별전 '겸재 정선'에도 출품되지 않았던 귀한 작품이다.

정선의 '박연폭포'를 전시실에서 마주하는 순간, 수직으로 거침없이 쏟아지는 물줄기가 눈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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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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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흰 물줄기…조선 강산에 압도

입력 2026.03.25 20:50

  • 명세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② 겸재 정선 ‘박연폭포’

인물 줄이고 자연 거대하게 연출

상상해 그린 중국 여산폭포보다

웅장함 초점 맞춘 ‘진경산수화’

18세기에 정선이 그린 ‘박연폭포’. 개인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8세기에 정선이 그린 ‘박연폭포’. 개인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이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대개 상설전시실은 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개편을 통해 평소 일반이 접하기 힘든 외부 명작들을 상설전시관으로 특별히 초대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불교회화실에 다양한 사찰에서 소장한 괘불(掛佛)을 소개하는 것처럼 서화실에서도 민간에 숨겨진 명작을 소개하려는 취지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겸재(謙齋) 정선의 ‘박연폭포(위 사진)’다. ‘박연폭포’는 그동안 좀처럼 공개되지 않았던 개인 소장품으로 겸재 정선을 집중 조명한 초대형 전시인 2025년 호암미술관 특별전 ‘겸재 정선’에도 출품되지 않았던 귀한 작품이다.

정선의 ‘박연폭포’를 전시실에서 마주하는 순간, 수직으로 거침없이 쏟아지는 물줄기가 눈을 압도한다. 화면 하단에 옹기종기 모인 선비들의 작은 뒷모습은 이 거대한 광경을 한층 부각한다. 이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조선시대 문인들이 ‘해동 제일’이라 극찬했던 박연폭포다. 개성 대흥산성 부근에 위치한 이 폭포는 위쪽 연못인 ‘박연(朴淵)’에서 시작해 아래쪽 연못인 ‘고모담(姑姆潭)’으로 떨어진다.

특히 박연에는 전설이 전해오는데, 박진사(朴進士)라는 인물이 연못가에서 젓대를 불자 용녀(龍女)가 그 소리에 감동해 그를 물속으로 끌어들여 남편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다. 연못 이름 또한 그의 성을 따서 붙여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지리지 <중경지(中京誌)>는 박연폭포를 두고 “흰 무지개가 허공에 비치는 듯하며 나는 눈이 벽에 뿌려대는 듯하고, 우레가 날고 번개가 치는 듯하여 그 소리가 하늘과 땅을 진동한다”고 기록했다. 당시 사람들이 박연폭포를 보며 느낀 감정은 폭포에서 떨어지는 굉음만큼이나 강렬했던 듯하다.

정선은 현장의 생동감을 옮기기 위해 대담한 ‘미학적 왜곡’을 선택했다. 실제 박연폭포의 높이는 약 37m 남짓이지만, 정선은 인물의 크기를 줄이고 폭포수를 실제보다 길게 늘여 그렸다. 또한 폭포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앙시(仰視)의 시점으로 그려 감상자가 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위압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했다.

폭포 주변을 감싼 암석들은 짙은 먹으로 겹겹이 칠해 폭포의 하얀 물줄기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18세기에 정선이 그린 ‘여산폭포’.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18세기에 정선이 그린 ‘여산폭포’.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흥미로운 점은 조선시대 지식인들에게 박연폭포는 단순한 자연 풍경 이상의 의미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박연폭포를 중국 강서성(江西省)의 명소인 여산(廬山)폭포와 비견되는 존재로 여겼다.

여산폭포는 중국의 수많은 문인에게 영감을 주는 곳이었으며, 특히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701~762)이 쓴 ‘여산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瀑布)’라는 시는 조선 문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암송될 만큼 친숙했다. 그들이 이 시를 읊조리며 직접 보지 못하는 여산폭포를 마음속으로 동경해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땅에 그에 못지않은 절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큰 자부심이 되기에 충분했다.

정선의 절친한 벗인 이병연(李秉淵·1671~1751)은 “(박연폭포는) 예로부터 중국 여산의 경치에 필적한다 말해왔는데”라고 읊었고, 박윤원(朴胤源·1734~1799) 역시 “정녕 여산과 천하에 맞설 만하니 우리 동쪽엔 이만한 폭포 다시 없네”라고 읊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정선의 ‘박연폭포’가 얼마나 파격적인지는 정선의 또 다른 작품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여산폭포(아래)’와 비교하면 더욱 선명해진다. 이백의 시를 시각화한 이 작품은 여산폭포를 관조하는 시점으로 그려졌다. 한 번 꺾여 내려오는 폭포수와 은은한 단풍이 어우러져 사뭇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왜 정선은 박연폭포와 달리 여산폭포를 이처럼 전형적인 구도로 그렸을까? 실제로 정선은 평생 중국 땅을 밟아본 적이 없다. 그에게 여산폭포는 문헌과 각종 시각자료를 바탕으로 머릿속에서 재구성한 이른바 ‘관념의 산수’였던 것이다. 이처럼 관념 속 여산을 그릴 때는 학습된 전형적 도상을 따랐지만, 직접 마주한 우리 강산 앞에서는 형식과 틀을 과감히 벗어던진 진짜 조선의 모습을 그려낸 셈이다. 남의 눈을 빌려 그린 관념 산수를 넘어 자신의 눈으로 본 광경을 그린 정선, 그의 붓끝에서 이렇게 조선의 진경산수화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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