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서거 116주기를 하루 앞둔 25일 이규수 전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서거 약 5개월 뒤인 1910년 9월 10일 보도된 ‘오사카마이니치신문’(현 마이니치신문)의 기사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규수 전 교수 제공
백범 김구 선생이 잠들어 있는 서울 효창공원에는 ‘삼의사 묘역’이 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던 백정기·윤봉길·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봉환해 안치한 실묘다. 그 옆에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다. 백범이 안 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려고 조성해둔 곳이다. 반대로, 그 가묘는 안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해 현재까지 비어 있다. 백범은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이곳을 찾아 의사들에게 지혜를 구했다고 한다.
26일은 안 의사 116주기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한국 초대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옥고 끝에 이듬해 3월26일 뤼순감옥에서 순국했다. 안 의사는 사형집행 전 두 동생에게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일제는 동생들의 시신 인도 요구를 거부하고, 뤼순감옥 인근에 아무런 표식도 없이 매장했다. 누구도 유해를 찾지 못하도록 일부러 숨겼다고 봐야 한다. 의사의 묘역이 한국인들의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기념비가 될까봐 두려웠을 것이다.
해방 이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으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2008년에는 한·중이 매장지로 추정된 랴오닝성 다롄시 소재 위안바오산을 공동 발굴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다행히 안 의사의 유해가 매장된 장소를 추정할 수 있는 1910년 9월10일자 ‘오사카마이니치신문’(현 마이니치신문) 기사가 최근 발굴됐다. 유해 매장지를 직접 방문한 기자가 작성한 기사에는 “오른편으로 마잉푸라 불리는 작은 부락 거리의 한쪽 끝과 약 1정(109m) 떨어진 남쪽 산기슭이 가깝다”는 등의 구체적인 지형 묘사가 담겨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3·1절 107주년 기념사에서 “일찍이 안중근 의사께서는 동양평화론을 통해 한·중·일 3개국 간의 협력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길임을 역설한 바 있다”고 했다. 유럽부터 중남미·중동까지 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며 인접국 간 협력과 평화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요즘이다. 이번에 새로 발굴한 사료를 단서로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 봉환하고, 동양평화론에 담긴 혜안과 통찰도 국내외에 널리 공유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