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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1980년대 민족해방운동의 역사를 담은 대형 걸개그림을 제작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확정받은 영화감독 전승일씨가 27일 재심 법정에 섰다.

전씨는 "국가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는데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 판결이 남아 있는 것은 모순"이라며 "국가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허서윤 판사는 이날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전씨에 대한 형사재판 재심의 첫 공판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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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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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유죄’ 전승일 감독 “민주화 기여 인정됐는데 전과 그대로…모순 끝내야”

입력 2026.03.27 13:28

  • 최혜린 기자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1980년대 ‘민족해방운동사’ 그림 그렸다가

안기부 끌려가 불법구금…국보법 유죄 확정

전씨 측 “불법 공권력 심판해 상처 치유해야”

전승일 감독이 2024년 6월10일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재심개시청구 기자회견를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전승일 감독이 2024년 6월10일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재심개시청구 기자회견를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1980년대 민족해방운동의 역사를 담은 대형 걸개그림을 제작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확정받은 영화감독 전승일씨가 27일 재심 법정에 섰다. 국가 폭력을 당한 날로부터 37년 만이다. 전씨는 “국가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는데 국가보안법 위반 유죄 판결이 남아 있는 것은 모순”이라며 “국가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허서윤 판사는 이날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전씨에 대한 형사재판 재심의 첫 공판을 진행했다.

전씨는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89년 ‘전국대학미술운동연합’에서 활동하며 대형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제작에 참여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이 그림이 “북한의 주장과 활동에 동조한 이적표현물”이라며 당시 24살이었던 전씨를 끌고 갔다. 이후 19일간 불법구금과 가혹행위가 이어졌다. 전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확정받았다. 수년 뒤 그림은 민중미술로 재평가돼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됐고, 전 감독은 2007년 민주화보상법상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지만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기록은 그대로 남았다.

이번 재판은 전씨가 2024년 6월10일 ‘국가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유받고 싶다’며 재심을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불법 구금이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하며 재심 개시 결정에 항고를 반복했지만, 법원에서 모두 기각돼 재심 청구 2년여 만에 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심 법정에서 검사 측은 불법구금이 있었더라도 과거 안기부가 수집한 모든 증거가 ‘위법수집증거’가 되는 건 아니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어 검사가 “걸개그림 제작을 통해 북한 등 반국가 단체 주장과 활동에 동조해 이적 행위를 했다”며 과거 안기부가 전씨에게 적용한 공소사실을 그대로 읊자, 전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영화감독 전승일씨가 자신의 형사재판 재심 절차가 시작된 27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회전문 앞에서 1980년대 제작에 참여한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를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혜린 기자

영화감독 전승일씨가 자신의 형사재판 재심 절차가 시작된 27일 서울중앙지법 서관 회전문 앞에서 1980년대 제작에 참여한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를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혜린 기자

전씨 측은 과거 안기부의 수사가 전부 불법이었다는 점, 예술가의 정당한 창작활동을 ‘이적표현물’로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주장했다. 전씨 측은 민중미술 분야 전문가인 이태호 교수를 증인으로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과거 전씨의 1심 형사 재판에서도 그림의 미술사적 의미에 대해 증언했던 인물이다.

전씨는 이날 재판이 시작되기 전 기자들과 만나 “만감이 교차하고 착잡하다”며 “국가의 잘못을 국가 스스로 인정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화에 기여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제가 국가보안법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은 절대 양립할 수 없고, 어느 한 쪽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며 “검찰은 (과거처럼) 무리하게 유죄를 주장할 게 아니라 무죄를 구형해야 하고, 재판부도 무죄 판결을 내려주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전씨를 대리하는 박찬준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전씨가 추진한 남북 예술 교류는 노태우 전 대통령도 앞장서서 권장했는데, 단지 예술가란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올가미를 씌워 처벌한 건 명백한 공권력 남용”이라며 “전씨가 꿈꾼 것은 반국가 활동이 아니라 민족의 화해와 평화였다”고 했다. 이어 “이번 재심은 한 개인의 무죄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국가가 휘두른 불법 공권력을 심판하고, 현대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역사적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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