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 선언’ 예멘 후티 반군, 홍해 점거 가능성
홍해 연안 얀부항 통한 대체 수입 차질 불가피
“홍해 봉쇄 실현되면 두바이유 150달러 상회”
2차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사흘째인 29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문재원 기자
친이란 무장세력 예멘 후티 반군이 28일(현지시간) 미국·이란 전쟁 참전을 선언하자 국내 정유사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점거 이후 원유 수입 우회로로 활용해온 홍해마저 봉쇄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은 물론 나프타 등 석유화학 기초 원료 수급 차질도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29일 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은 홍해 봉쇄 위기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홍해를 통한 원유 수입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했었다”며 “현재 안전한 대체 수입처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에쓰오일 등은 미국·이란 전쟁으로 주요 원유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홍해를 대체 경로로 활용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약 1200㎞ 길이의 송유관(파이프라인)을 이용해 동쪽에 있는 원유를 서쪽으로 옮기면 이를 홍해 연안 도시 얀부에서 실어 국내로 들여오는 방식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사우디는 현재 하루 약 440만배럴의 원유를 얀부항에서 선적하고 있다. 전쟁 발발 전엔 200만배럴 수준이었다.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인도, 일본 등 아시아 국가가 얀부항을 통한 대체 수입처 확보에 나섰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향후 500만배럴까지 선적량을 늘릴 계획이다.
문제는 홍해와 아덴만을 잇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호르무즈 해협 못지않은 교통 요충지로 꼽힌다는 점이다.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틀어쥐면 얀부항을 출발한 선박이 홍해를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
정유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원유 수입 경로는 기밀이라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다”면서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가장 먼저 선택한 대안이 얀부항”이라고 말했다.
홍해 봉쇄는 유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제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에 따르면 홍해 봉쇄가 실제로 이뤄지면 전 세계 하루 원유 공급 차질 규모는 현재 1000만배럴에서 1700만배럴로 늘어난다. 유라시아그룹은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50달러 이상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해는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약 12%가 통과하는 항로다. 앞서 후티 반군은 2023년 11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충돌 당시 홍해를 점거하고 민간 선박을 공격한 바 있다. 당시 홍해가 봉쇄되면서 각국 선박은 남아프리카공화 희망봉으로 돌아가야 했다. 희망봉으로 우회하면 항해 일정이 길게는 보름 정도 더 늘어난다. 연료비와 보험료 등이 올라 전체 물류비가 폭등할 수도 있다.
이미 흔들린 나프타 공급망에도 추가 충격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 시장분석 전문 업체인 이거스는 후티 반군이 2024년 1월 나프타를 실은 영국 국적의 선박을 공격했을 당시 “아시아의 나프타 공급 부족 현상을 더욱 악화할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실제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향하는 선박 상당수는 수에즈 운하를 통해 홍해에 진입한 뒤 바브엘만데브 해협으로 빠져나간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나프타 수입량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율은 5.9%(95만8081t)에 달한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중동산 나프타든 유럽산 나프타든 가릴 처지가 아니다”라며 “홍해까지 막히면 상황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23일 LG화학의 전남 여수산단 내 나프타분해시설(NCC) 2공장 가동 중단에 이어 롯데케미칼은 지난 27일 여수공장 전체 생산시설 가동을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