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의 지지자들이 지난 27일(현지시간) 예멘 수도 사나에서 열린 이란과의 연대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가 이스라엘 공격에 나서면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불거진 중동 위기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지는 가운데 후티가 홍해 일대에서도 군사 작전을 강화할 경우 국제 원유시장에 추가적인 충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후티는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 미사일 공격을 가했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참전을 공식화했다. 야히야 사리 후티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주요 군사 목표물을 겨냥해 미사일 공격 등 첫 번째 군사 작전을 수행했다”며 “이스라엘이 저항 세력의 모든 전선에 대한 공격을 멈출 때까지 작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후티가 군사 행동에 나선 것은 지난달 28일 전쟁이 발발한 후 처음이다. 이스라엘은 예멘에서 날아든 미사일을 모두 요격했다고 밝혔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저항의 축’ 중 레바논 헤즈볼라,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에 이어 예멘 후티까지 이번 전쟁에 뛰어들면서 전쟁이 중동 지역 전체로 확대될 것이란 우려를 키웠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예멘 전문가 파레아 알 무슬리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후티가 중동의 광범위한 분쟁에 가담하기로 한 결정은 심각하고 매우 우려스러운 확전을 의미한다”며 “이미 불안정한 전쟁을 더욱 확대할 위험이 있고 지역 안정과 글로벌 무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상황에서 후티가 홍해 통행까지 위협한다면 이미 큰 타격을 받는 세계 경제가 한층 더 휘청일 가능성이 거론된다. 후티는 2023년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했을 때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홍해 입구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는 상선을 수십 차례 공격한 바 있다. 아베드 알타위르 후티 반군 지휘관은 지난 14일 “이란을 돕기로 결정한다면 바브엘만데브 해협 봉쇄가 최우선 선택 중 하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담긴 지도. 로이터연합뉴스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수에즈 운하 항로의 관문인 홍해 남단 입구로 세계 원유 생산량 약 10%가 지나는 핵심 경로 중 하나로 꼽힌다. 이곳까지 막혀 해상 물류의 동맥 두 곳이 동시에 경색되면 중동발 에너지 위기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후티가 2023년 이곳을 위협했을 때도 선박들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도는 우회로를 택하면서 물류비가 폭증하고 국제 원유 가격이 오르는 등 글로벌 공급망이 혼란을 겪었다. 무슬리미는 “후티의 개입이 특히 홍해와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비롯한 주요 상업 해상 항로에 미칠 잠재적 충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다.
후티가 본격적으로 홍해 항행을 위협하고 나선다면 그동안 군사 행동을 자제해온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국가들이 대응에 나서면서 이번 전쟁의 전선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기 위해 육상 파이프라인을 통해 하루 약 400만 배럴 원유를 홍해 연안 얀부항으로 운송하고 있는데, 후티가 홍해 등으로 공격을 확대할 경우 참전을 결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 후티가 예멘 수도 사나를 장악한 후 중동 지역 연합군을 이끌고 후티와 싸웠으며, 지난 4년간 후티와 불안정한 휴전 상태를 이어왔다.
다만 후티가 실제로 홍해 봉쇄 시도 등까지 공세 수위를 높일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BBC 등은 전했다. 후티는 헤즈볼라 등과 달리 한달 가까이 관망하는 태도를 유지하다 뒤늦게 참전한 만큼, 이란에 대한 의리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상징적인 수준의 공격에 나서는 데 그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후티로선 홍해 봉쇄를 시도할 경우 미·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국과 직접 충돌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FT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후티와 소통 채널을 열어둔 채 이란 전쟁에 개입하지 말 것을 촉구해왔다고도 전했다. 미국 리스크 자문사 바샤리포트의 설립자 모하메드 알바샤는 FT에 “후티의 초점은 이스라엘을 겨냥하는 데 맞춰져 있으며 적어도 당장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즉각적인 대규모 대응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다시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적인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