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8일,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란 전역에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다수의 관료들이 살해됐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폭격은 계속되고 있다. 이란도 텔아비브와 주변국 내 미군기지에 수백여대의 드론과 탄도미사일을 쏟아부었다.
이 전쟁이 왜 일어났고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핵무기 개발을 막는 데 목적이 있다지만, 전쟁 발발 직전 핵무기 개발 중단을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이었고 이란이 매우 전향적인 방안을 제시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보도되었다. 왜 싸워야 하는지를 알 수 없는 전쟁 한가운데서 “양심상 이란 전쟁을 지지할 수 없다”는 선언과 함께 미국의 국가대테러센터장이 사임했다.
한국의 시민들에게 이 전쟁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체감도가 다르다. 두 전쟁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도시를 초토화했지만, 유럽 국가들에 끼친 영향에 비해 동아시아의 끝자락에서는 뉴스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법이라는 트럼프
언론은 미군들의 죽음만 애도
보이지 않는 삶도 기억을 해야
‘노킹스 시위’에 지지를 보낸다
이 전쟁은 다르다. 한국의 시민들은 전쟁의 폐해를 실감하며 ‘전쟁에 휩쓸려 들었다’고 느낀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중동 지역 LNG 생산시설의 파괴로 석유와 가스의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소식 때문이다.
‘휘발유 리터당 가격’이 상징하는 위기의식 이외에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백 번 언론에 오르는 사진과 영상들이 보여주지만 보여주지 않는 것을 걱정한다. 공중에서 투하된 폭탄에 미니어처 장난감들처럼 부서져 내리는 건물들 풍경 외부에서, 연기가 시커멓게 솟아오르는 정유시설 폭발과 쏟아져 내리는 분진들 속에서 더 깊은 고통이 계속되고 있음을 안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 더 많은 사람들의 부상, 더더욱 많은 삶의 터전들의 붕괴, 수백만명의 난민들.
여성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전쟁의 프레임들>에서 ‘누구의 죽음을 애도하는가?’를 정하는 쪽이 권력이라고 보았다. 미국 군인들의 죽음은 언론에 보도되지만, 이란과 인근 지역의 죽음은 통계조차도 불명확하다.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들도 희생되고 있지만, 알려진 것은 극소수다. 미군의 오폭으로 샤자레 타이예베 초등학교가 피격되고 약 200명에 이르는 어린 학생과 교직원들이 생명을 잃었지만, 미국 정부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주 영국 언론 가디언은 집 위에 떨어진 이스라엘의 폭탄에 사망한 레바논의 여섯 살 소녀 나르지스를 애도하는 기사를 실었다. 분홍 블라우스를 곱게 입은 초롱초롱한 눈빛의 소녀를 그녀의 어머니는 “나이에 비해 지혜롭고(wise)” “꽃 같은(like a blossom)” 아이라고 애도했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지혜롭고 꽃 같은” 생명의 상실이 계속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네타냐후의 꼬드김에 넘어갔다지만, 이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왜 이런 무모한 행위를 계속하는 것일까? 아침 말과 저녁 말이 다르다지만, 그의 말과 행동에는 나름의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 저널리스트들의 분석이다. 레드 카이사리즘(Red Caesarism). 미국 뉴라이트 진영 내에서 부상하고 있는 정치이론으로, 부패하고 기능이 마비된 민주주의 제도를 구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1인 통치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로마 시대 공화정을 폐지하고 제정 시대를 열었던 카이사르(Julius Caesar)처럼, 민주주의에서 군주제 쪽으로 권력을 이동하고 독단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을 숭배하는 이론이다. 레드라는 수식어는 공화당의 색깔이다. 트럼프 정부에서 일하는 보수학자 마이클 앤턴의 책 <위험: 돌이킬 수 없는 미국(The Stakes: America at the Point of No Return)>의 메시지다. 법을 넘어선 비전을 제시하고 실행하는 결단력을 지닌 인물만이 미국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을 실천이라도 하듯, 트럼프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말이 법이자 도덕이며 전쟁도 자신만이 끝낼 수 있다고 장담해왔다.
이란 전쟁에서 트럼프는 승리할 수 있을까? 이 전쟁에서 그는 제왕의 권좌에 오를 수 있을까? 지난 주말 미국 전역은 물론 런던·파리·로마 등에서 대규모 반전 집회가 열렸다.
“왕도, 전쟁도 필요 없다(No Kings, No Wars)”는 슬로건은 법 위에 군림하는 절대권력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의지와 전쟁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담고 있다. 시민들의 건투를 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