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0일 ‘세계자살예방의날’이 되면 국회에서는 ‘자살예방유공자표창’ 행사를 한다. 아이러니다. 자살률이 줄었다면 모를까 현실은 그 반대이니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은 한국이 가장 높다. 20년째 1위다. 우리를 뺀 국가들의 자살률은 꾸준히 줄었다. 최근 20년 평균을 계산하면 10만명당 10명 정도다. 우리는 반대다.
이달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5’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9.1명까지 늘었다. 2위 국가인 슬로베니아의 17.5명에 비해서도 압도적이다. 국회의 행사는 자살 예방을 위한 게 아니라 ‘자살예방의날’을 위한 것이라 해야 맞다. 본말의 전도다.
얼마 전 ‘세계여성의날’에도 같은 문제를 느꼈다. 이날 많은 의원이 영상을 올렸다. 모두가 “성평등 민주주의의 실현”을 약속했다. 공허하게 들렸다. 때가 되면 ‘하게 되어 있는 말’을 담아 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한 건 했다”고 여기는 듯하다. 개인 방송이 늘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이미지만 생산할 뿐 현실 개선을 위한 노력은 없다. 엄밀히 말해 ‘가짜 정치’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OECD 29개국을 대상으로 ‘유리천장 지수’를 산출, 발표한다. 나라별로 사회환경이 여성에게 얼마나 불리한지를 비교해서 보여주는 지수다. 한국의 유리천장 지수는 해당 조사를 시작한 이래 12년 연속 최하위인 29위였고, 지난해 겨우 한 계단 올라 28위가 되었다. 남녀 임금 격차는 OECD 평균의 2.6배다. 대졸 여성 취업률도 절반을 겨우 넘는 56.6%로 최하위다.
국회 주류집단, 실질은 ‘신보수’
여성의 정치 대표성도 후진적이다. 168개국 여성 의원 평균 비율보다 7%포인트 낮다. 같은 지표를 이른바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보면 어떨까. OECD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한국은 34위다. 수도권 밖의 지방을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243명의 자치단체장 중 여성은 7명뿐이다. 민주당의 3선 이상 여성 의원은 10명인데, 모두 수도권 의원이다. 지방에는 한 명도 없다.
정치적 평등과 사회적 평등은 함께 굴러가는 두 개의 바퀴와 같다. 정치적으로 평등하게 대표되는 만큼 그것의 사회적 효과는 크다. 좀 더 건강하고 평등하고 자유롭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의 지표를 보이는 나라들은 한결같이 여성 대표성의 비율이 높다. 우리는 그런 경로로 가고 있지 않다.
비율은 낮아도 60명의 여성 국회의원은 있으니 그들이 잘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봐도 문제는 있다. 우선 사회적 지위의 기준에서 우리 여성 의원들의 상층 편향성은 지나치다. 대학원 이상의 학력 소유자가 90%를 넘고, 법률가(판사, 검사, 변호사) 출신은 물론 박사 학위 소지자 비율도 전체 평균보다 높다. 우리 사회 여성의 계층 및 직업 현실과 반비례한다.
다선의 지도자급 여성 의원 15명(추미애, 나경원, 조배숙, 남인순, 서영교, 진선미, 한정애, 김정재, 김희정, 백혜련, 송옥주, 이언주, 이재정, 임이자, 전현희)을 기준으로 보면 나을까. 이들의 젠더 감수성은 우리 사회 평균보다 높다고 볼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젠더 민주주의는 ‘다양함의 공존’이라는 인류의 위대한 이상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의원 대부분은 다원적 차이를 존중하지도, 공존의 가치를 중시하지도 않는, 독단의 정치를 해왔다. 여자 마초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86세력’으로 불리는 우리 국회의 주류집단이 가지는 문제는 더 크다. 전체 의원 평균연령은 58.3세이고 1960년대생이 60%다. 그들 다수는 과거 진보적 학생운동에 몸담았다. 청와대와 내각, 정당을 지금은 그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앞선 세대의 희생과 교육열 덕분에 신흥 중산층의 지위를 쉽게 차지했다. 최근에는 신성장과 중도 보수를 앞세워 새로운 발전 동맹을 구축하고 있다. 말로는 민주적일지 몰라도 실질에 있어 그들은 신보수다. 젠더 관련 과제는 “나중에” 하자며 “다시 성장”을 외친다. 평등의 의제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쳐두고 초일류 강국을 만들겠다는 “K몽”에 몰두하고 있다. 변형된 박정희 후예들이다.
말로만 “젠더 평등”…이미지 정치만
때때로 그들이 “이대남과 이대녀 갈등”과 젊은 세대의 “극우화”를 힐난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자기기만이다. 뒤처진 젠더 관점을 가진 그들이 누굴 탓할 수 있을까.
지금의 20대와 30대들이 교제와 결혼, 가사, 육아 등의 영역에서 짧은 시간 만에 일궈낸 젠더 평등적 변화는 놀랍고 고무적이다. 이미지가 아닌 실제의 기준에서 볼 때 지금의 20대와 30대는 젠더 평등의 세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86세력은 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저 남 탓과 비난 이미지를 부과하는 일에 능하다. 신종 지배계급의 출현이라 할 만하다.
박상훈 정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