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아침에는 밥 대신에 우유와 빵을 먹고 가겠다 하는데?” “좋은 빵은 몸이 곱고 잘 부풀어 올랐으며 탄력이 있고 큰 비례로 중량이 가볍습니다.”
조선일보 1927년 9월7일자 ‘식빵에 좋고 나쁜 것을 아는 법’ 속 문답이 이렇다. 1930년대가 되면 신문에 ‘엑, 인, 밀크, 언, 토스트’라는 음식이 등장한다. 풀어 쓰면 ‘egg in milk on toast’이다. 말하자면 구운 식빵 위에 우유 풀어 부드럽게 익힌 달걀을 올린 ‘오픈 샌드위치’이다.
1939년 10월24일부터 11월26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김영석의 소설 <춘엽부인> 속 한 장면도 흥미롭다. “종로로 나가 토스트에다 커피로 요기한 다음 최(승호)는 (신문)사로 들어갔다.” 등장인물 최승호의 늦은 출근길이 이랬다. 토스트는 대도시 직장인에게 한 끼가 될 만했다. 전에 없던 풍경이었다. 19세기 이래 한반도로 들어온 빵, 샌드위치, 토스트 삼총사는 신청년이 선망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모두에게 돌아갈 수는 없었다. 비싼 건 둘째고 빵 자체가 늘 부족했다. 그러다 세상이 바뀐다. 제빵제과 공장은 1950년대 말~1960년대 초부터 식빵을 쏟아냈다. 미국 원조 밀가루와 정부의 분식 장려 정책이 동력이었다.
또 다른 식품도 뒤를 이었다. 1959년 서울식품공사(서울식품공업)가 마가린 생산을 시작한다. 1960년 삼강유지화학(롯데푸드)도 마가린 생산에 뛰어든다. 1969년 마요네즈를 내놓은 풍림식품(오뚜기)은 1971년 케첩 생산을 시작한다. 1970년대 들어 이 모두가 널리 유통되었다.
이윽고 빵집의 식빵과 ‘샐러드 샌드위치(사라다빵)’와 토스트 셋 다 거리로 나섰다. 값싼 식빵은 마가린 녹은 번철에서 지져졌다. 지진 빵 위에는 양배추채와 어울린 달걀부침이 놓였다. 케첩과 마요네즈는 양념 겸 접착제였다. 설탕은 달콤함을 더했다. ‘길거리 토스트’의 탄생이다. 1995년 이후에는 설탕 대신 과일즙을 쓰는 방식이 등장했다. 이후 햄, 치즈, 소스 등은 더욱 다양해졌다. 이를 토스트 포장지에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동안, 따듯할 때 재빨리 먹어치우기야말로 길거리 토스트의 핵심이다.
이 음식에 영어 ‘코리안 스트리트 토스트(Korean Street Toast)’, 중국어 ‘한국가두토사(韩国街头吐司)’ 또는 ‘한식소채계단토사(韩式蔬菜鸡蛋吐司)’, 일본어 ‘한국야타이토스토(韓国の屋台ト-スト)’ 같은 이름이 붙는다. 여기서 ‘가두’는 길거리, ‘소채’는 양배추채, ‘계단’은 달걀부침이다. 야타이는 포장마차이다. 명명이야 어찌 되었든 한국 밖 매체에서 한국인은 비좁은 가판대 앞에 서서, 빨리빨리 낸 토스트를, 한 손에 들고 빨리빨리 씹어 넘기는 존재로 설명되기도 한다. 이때 오븐도 토스터도 아닌 번철, 기름기 먹은 일정한 규격의 빵, 날채소에 달걀부침, 육가공품, 마요네즈와 케첩과 과일즙의 병렬은 이국적인 풍경을 이룬다.
하지만 ‘빨리빨리’와 ‘따듯하게’가 빠지면? 분위기까지 있어야 진짜다. ‘빨리빨리’와 ‘따듯하게’가 함께여야 제대로 된 길거리 토스트이다. 그것마저 인터넷은 안내 가능하다. 가서 ‘진짜’를 맛보란다. 불과 한 세기 사이의 지구적인 추이다. 이런 추이까지 포함해서 동시대 한국 음식 문화사가 구성되고 있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