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가운데)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지난해 9월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찬 회동을 하기 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국 사회의 정치적 분열은 이념의 양극화보다는 정서적 양극화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12·3 내란 이후 가족·친구와 정치갈등 경험이 있거나 사회가 분열돼 있다고 인식하는 경우 정치적 자기검열로 목소리를 덜 내고 있다고 분석됐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지난 27일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국민통합’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경향신문·중앙일보가 국가미래전략원과 공동으로 기획하고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9~31일 전국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한 연구다. 지난 1월 경향신문·중앙일보는 새해를 맞아 분열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통합의 대화를 시작하기 바라는 시민의 열망을 담은 기획 <이제 통합을 논하자>를 보도했다.
정연경 국가미래전략원 선임연구원은 한국 사회 양극화가 이념이나 정책 차원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남북문제와 노동자·기업 문제를 제외하면 한·미동맹 강화, 고소득자들에 대한 세금 부과, 사형제 폐지, 여성 차별 해소를 위한 정부 노력 등 정책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자들 태도는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민주당 호감도와 국민의힘 호감도의 차이로 측정한 정서적 양극화는 양당 지지자 사이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정서적 양극화는 내가 지지하는 정당과 상대 정당 사이의 감정적 거리를 뜻한다. 정 연구원은 “한국 사회 양극화는 이념, 이슈가 아닌 감정적 호불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강성 지지층일수록 정서적 양극화가 심화됐다. 정당 지지가 가장 약한 응답자와 가장 강한 응답자 사이의 정서적 양극화 점수 차이는 민주당, 국민의힘 지지자 모두 42.8점(매개 효과 분석을 위한 일반화 구조방정식 모델을 통해 호감도를 0~100으로 계산)에 달했다. 강성 지지층이 극단화되는 데는 내적 정치 효능감이 매개 역할을 했다. 정당 지지가 강할수록 정치를 잘 이해하고 참여할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 커지고, 이것이 상대 진영의 입장을 틀린 것으로 단정짓는 경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정 연구원은 “높은 정치 관심과 효능감을 가진 강성 지지층이 오히려 민주주의적 협치를 저해하는 양극화의 주된 동력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 정치적 갈등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설문에서도 ‘강성 정당 지지자’(21%)라는 응답이 1위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여당(19%), 대통령(18%), 야당(14%), 기성 언론(12%), 강성 유튜버(7%)가 뒤를 이었다.
구세진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계엄·탄핵 이후 한국인의 정치적 자기검열 실태를 분석했다. 같은 조사에서 “정치적 견해 차이 때문에 말을 아끼게 되는 경험을 자주 한다”는 응답이 32.4%였다.
자기검열과 가장 관련성이 높은 변수는 가족·친구와의 정치 갈등 경험이었다. 갈등을 겪어본 사람의 자기검열 비율은 46.4%로, 그렇지 않은 사람(22.7%)과 큰 차이를 보였다. 사회 전반이 분열돼 있다는 인식 자체도 발언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 교수는 “사회가 분열되어 있다는 인식은 말했을 때 돌아올 사회적 반응을 실제보다 더 적대적으로 예측하게 만들어 정치적 발언의 비용을 과대평가하게 한다”고 밝혔다.
침묵은 특정 집단에 더 집중됐다. 진보적일수록, 젊을수록, 계층 이동 가능성에 회의적일수록 자기검열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교육 수준이 높고 정치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할수록 더 침묵하는 경향도 확인됐다. 구 교수는 “의견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기 때문에 더 예민하게 위험을 감지하는 것”이라며 “자기검열은 개인의 심리적 선택이 아니라, 누가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강원택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이 지난 27일 서울대에서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국민통합’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