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 가야산의 천년고찰 해인사에는 죽어서도 기품을 잃지 않고 서 있는 거대한 나무가 있다. 나무가 이 자리에 심어진 것은 신라 애장왕 때다.
애장왕은 서기 800년에 13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신라 제40대 임금이다. 애장왕은 관례에 따라 혼례를 치렀는데, 얼마 뒤 왕후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다. 임금은 백방을 수소문했지만, 왕후의 병이 차도를 보이지 않아 마침내 불가를 찾게 됐다.
그때 가야산에는 법력이 높은 것으로 널리 알려진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라는 두 스님이 있었다. 임금은 그들을 찾아가 왕후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했고, 스님들은 왕후의 병을 낫게 할 기도에 전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후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애장왕은 보은의 사례로 가야산에 큰 절을 지으라고 명했다. 해인사의 창건 설화다. 애장왕은 해인사를 자주 찾았고, 손수 좋은 나무를 절집 주위에 심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무려 1200년 전의 일이다.
세월 흐르며 그때의 나무들은 모두 죽었다. 그 가운데 한 그루가 간신히 고사목으로 남아 있다. 옛 임금의 설화를 일러주는 유일한 증거다. 일주문에서 천왕문으로 오르다 오른쪽에서 만나게 되는 우람한 고사목이다. 생명은 잃었지만, 그의 품에는 임금의 손길이 담겼다.
줄기는 허옇게 말랐지만, 줄기만으로도 주변의 살아있는 나무를 압도할 만큼 융융하다. 가히 ‘왕의 나무’(사진)라 할 만한 기품을 갖추었다. 둥치의 둘레는 5m를 훨씬 넘고, 높이도 7m 가까이 된다. 고사목이 된 ‘왕의 나무’의 존재감은 지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절로 멈추게 할 만큼 도드라진다. 생명의 끈을 내려놓았지만, 나무는 죽어서도 임금의 자취를 잃지 않았다.
나무 앞에 서서 가만가만 나무 줄기 안에 들어 있을 세월의 흐름을 마주하면 그 안에 깃든 1200년 전 어린 임금과 그를 둘러싼 이들의 사람살이 들고남이 고스란히 살아 나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