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님, 텔미 하우 유 필(tell me how you feel)?”
지난 21일 BTS 컴백 라이브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 생중계로 시청하던 중이었다. 첫 곡 ‘에일리언’의 가사 속 ‘김구’라는 단어가 유독 귀에 꽂혔다. 가사를 찾아 전문을 읽고 나니, 방금 전까지 그저 화려하게만 보이던 무대가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글로벌 톱스타이지만, 서구의 시선 속에서는 여전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차별과 편견 앞에서 위축되는 순간도 있었을 일곱 청년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렇기에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는 <백범일지>의 한 구절은 묘한 충족감을 안겨준다. 여전히 작은 나라이고 물리적 힘은 부족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높은 문화의 힘’이 있다고, 이 노래를 세계가 듣고 열광하는 게 그 증거라고 말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비판도 있지만 공연이 남긴 성과는 분명했다. 서울의 중심, 광화문의 멋진 야경을 전 세계인이 실시간으로 바라본 것 자체가 성과라 할 만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한민국 홍보에 정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 감흥이 며칠간 지속되고 있었는지, 지난 24일 뉴스타파가 보도한 기사 한 편을 읽는데 그 광화문 야경이 떠올랐다. 다만 이때는 찬란하고 자랑스러운 광경으로서가 아니었다. 기사는 지난 10일 경기 이천의 자갈공장에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베트남 청년 응우옌 반 뚜안의 유골이 고향 가족들에게 인계되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한국 유학을 준비한 적도 있다고 한다. 가족이 제공한 듯한 짧은 영상 속엔 지난 설 연휴에 고향집을 방문한 그의 모습도 있었다.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은 옷차림도 머리 모양도 딱 그 또래 한국 청년 같았다.
한국에 와 있는 유학생과 관광객이 대체로 그렇듯, 그 역시 자라며 접한 여러 콘텐츠의 영향으로 한국에 호감을 가졌을 것이다. 다른 점은 ‘노동자’로 한국에 왔다는 것뿐이다. 어쩌면 그 차이를 과소평가했을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보증하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취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목숨을 잃은 일터 현장은 폐허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공간이었다. 서울 광화문과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라 할 만큼 다른 장소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런 곳에 갓 스물이 넘은 청년을 일하라며 들여보냈고, 단 한 차례도 안전점검을 하지 않았다. 고용주는 컨베이어 벨트를 잠시 멈추는 비용만큼도 그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1월, 대법원은 2020년 경기 포천의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다 숨진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적법하게 입국한 근로자’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숱한 외국인 노동자가 비닐하우스에 사는 현실은 바뀔 기미가 안 보인다. 이 비닐하우스들과 서울 광화문은 얼마나 다른 장소인가?
안타깝게도, 이런 일자리들이 만연한데도 매년 5만명이 넘는 청년들이 새로 한국에 들어온다. 그들이 한국을 택하는 데에는 그 ‘높은 문화의 힘’이 작용한다. 심하게 말하면 ‘인력 브로커’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냥 자랑스러워하면 되는 것일까? 김구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