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봄은 돌아왔고, 곳곳에 꽃이 피어난다. 그러나 꽃이 피어나는 봄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이들에게는 위험한 계절이다. 우울감이 몸과 마음을 덮친다. 벚꽃이 만개하는 날이면 그 고통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사람들이 꽃구경한다고 할 때 피해자들은 불면의 밤을 보내고, 평소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시기도 한다. 그런 4월이 코앞에 와 있다.
재난을 경험한 피해자들에게는 시간이 약이 되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줄곧 시계가 그날에 멈춰져 있다고 말하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피해자라고 하면 보통 자식을 앞세운 부모들을 떠올린다. 자식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을 때, 그 상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보다 더 크다. 사람들은 그 부모의 고통을 지칭하는 말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그 부모들 곁에는 형제자매를 떠나보낸 또 다른 형제자매들이 있다. 그들 역시 같은 피해자임에도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네가 부모님께 더 잘해야 한다”고 쉽게 말하곤 한다. 그 말을 새겨들은 형제자매들은 자신의 슬픔을 억누르고 부모님 앞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다. 그 애씀이 트라우마로 남는다.
피해자들 중에는 사건의 현장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도 있게 마련이다. 생존자들은 지옥에서 살아나왔지만, 세상이 지옥이다. 청년들이 쓰는 말 중에 ‘누칼협’이란 말이 있다. “누가 칼 들고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 가라고 협박했냐, 누가 칼 들고 이태원에 놀러 가라고 협박했냐”고 하는 말들이다. 그런 말에 위축된 이들은 자꾸 집 안으로 숨어든다.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서기에는, 세상이 너무 위험하다.
트라우마 딛고 우리 곁에 서게
지금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10대와 20대를 지나며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겪었다. 또래의 죽음을 지켜봤고, 그 죽음마저 가차 없이 모욕당하는 장면을 경험한 세대다. 충분히 존중받지도, 온전히 위로받지도 못한 채 시간을 통과해왔다. 그 결과, 이들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숨기는 데 익숙해졌고, 스스로를 ‘저주받은 세대’라 부르며 자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청년들의 손을 잡아줄 수는 없을까. 그것은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우리는 당신들 곁에 서 있으려 한다고 말해줄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 속에서 4·16재단이 이번 봄에 특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이다. 재단은 매년 ‘기억은 힘이 세지’ 캠페인을 통해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청소년들과 나누자고 제안해왔다. 많은 시민이 호응해 주었고, 그런 덕분에 매년 청소년들에게 노란 리본과 배지를 나누어왔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재난을 경험한 청년들의 손을 본격적으로 잡으려 한다. 그들이 자신의 방에서 문을 열고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자신의 고통의 경험이 오히려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들어가는 에너지로 쓰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래서 올해 4월까지 ‘기억의 수호자’를 모집한다. 모인 기금으로는 ‘더살림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두 가지 사업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재난을 경험한 청년들이 생명안전 관련 단체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며 경험을 쌓고, 활동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도록 돕는 것이다. 재난을 경험한 이들이 생명안전 단체의 활동가가 되어 현장에 나가게 되면 피해자의 곁을 지키는 지원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부른다.
또 하나는 ‘꿈 응원’ 사업이다. 개인 또는 팀 단위로 지원을 받아 하고 싶은 계획을 제출하도록 한다. 이들은 적은 금액으로도 가고 싶은 여행을 떠나고, 음악을 만들고,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확장해간다. 이전 사업을 통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활력을 만들어낸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재단이 마련한 아카데미 강좌에 참여하고, 멘토의 도움을 받으며 세상과의 접점을 넓혀간다. 그렇게 1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신기하게도 자신 안에 있던 힘을 발견하게 된다.
이달까지 ‘기억의 수호자’ 모집
세월호 참사만이 아니라 이태원,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비롯해 크고 작은 재난을 경험한 청년들이면 모두 포함된다. ‘기억의 수호자’는 개인만이 아니라 기업 단위로, 노동조합으로, 모임이나 단체로 참여하면 더 빛날 것이다. ‘기억의 수호자’로 함께하실 분, 어디 계시는가?
기억의 수호자 캠페인 페이지 바로가기 https://416foundation.org/guardians-of-memory/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