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 열차 안중근’? 선 넘은 AI 조롱
법의 사각지대에서 챙기는 ‘조롱의 수익’
돈이 안 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의 규제’
틱톡에 올라온 ‘안중근 방귀 열차’ 영상. 서경덕 교수 페이스북 갈무리
3·1절을 앞두고 유관순 열사를 희화화하는 AI 동영상이 온라인에 확산돼 논란이 됐습니다. 영상 속 한 중년 여성이 “야, 유관순. 여기서 방귀 뀌지 마”라고 말하자, 유 열사는 여성의 얼굴에 대고 방귀를 뀐 뒤 “속이 다 시원하다”고 답합니다. 다른 영상에서는 하반신이 로켓으로 합성된 유 열사가 우주로 날아갑니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조롱성만 짙은 이 영상들은 유관순 열사의 서대문형무소 투옥 당시 사진을 AI로 복원해 만든 것입니다. 이처럼 고인을 활용한 모욕성 콘텐츠가 급증하면서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오늘 에디터픽에서는 선을 넘은 AI 영상 콘텐츠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방귀 열차 안중근’? 선 넘은 AI 조롱
최근 유튜브와 SNS에서는 고인을 활용한 AI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의 장면에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하거나, 세상을 떠난 배우 이순재씨, 김새론씨, 김주혁씨에게 천사 날개를 달아 살아 움직이게 만든 영상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영상들은 고인을 기리는 추모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고인을 희화화하고 모욕할 목적이 다분해 보이는 영상입니다. 안중근 의사 순국일이었던 지난 26일을 앞두고는 열차와 풍선에 안 의사의 사진을 합성하고 방귀 소리를 넣은 영상들이 잇달아 올라왔습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틱톡에 안중근 방귀 영상이 5개나 올라와 있고 누적 조회수는 약 13만회를 기록했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윤봉길, 김구 등 다른 독립운동가를 조롱하는 영상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해외 상황도 비슷합니다. 미국에서는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거 구호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거나,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1963년 그의 역사적인 연설에 짐승 소리를 합성한 영상이 퍼져 논란이 일었습니다.
AI를 이용해 제작된 유관순 열사 희화화 영상. 틱톡 갈무리
법의 사각지대에서 챙기는 ‘조롱의 수익’
문제는 현행법상 이를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고인 모욕은 ‘사자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 있는데, ‘허위 사실을 적시했을 때’만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조롱이나 욕설은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은 모욕죄의 적용 대상도 아니어서 법적 대응에 한계가 명확합니다.
고인을 모욕하는 콘텐츠로 발생한 수익을 제작자가 고스란히 챙간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제작자가 고인을 모욕해 높은 조회수를 올리면 유튜브, 틱톡 등 플랫폼으로부터 광고 수익을 배분받지만, 유족들은 가족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정부는 미국 등 사례를 참고해 2022년 고인의 초상권을 사후 30년간 보장하는 ‘인격표지영리권(퍼블리시티권)’ 도입을 위해 민법 개정을 시도했지만, 유명인의 얼굴을 이용한 비판·패러디 등을 어렵게 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지적에 부딪혀 논의는 중단된 상태입니다.
한떄 온라인상에서 유행했던 밈(인터넷 유행) ‘트랄라레오 트랄랄라’가 등장하는 틱톡 영상 갈무리. 대표적인 AI 슬롭으로 꼽힌다.
돈이 안 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의 규제’
신종범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변리사)는 “형법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 벌어지고 있고, 법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입법의 필요성을 지적합니다. 정영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특임교수도 “추모와 수익 창출 등 목적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를 포함해 법제가 기술 발전을 따라갈 수 있도록 포괄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가장 실질적인 해법은 ‘제작 유인’인 돈줄을 끊는 것입니다. 결국 일부 누리꾼들이 이런 악성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튜브는 지난해 7월부터 AI로 대량 생산된 저품질 콘텐츠인 ‘AI 슬롭’ 등 ‘비진정성 콘텐츠(Inauthentic Content)’에 수익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규제 대상에 고인을 조롱하는 콘텐츠도 포함해 돈이라는 제작 유인 자체를 없애는 거죠.
유관순 열사를 희화화하는 AI 영상을 두고 유가족은 “마음을 송곳으로 칼로 찌르는 듯한 기분이 든다”며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자유로운 표현은 민주주의의 근간이지만, 타인의 존엄을 짓밟을 권리까지 포함하진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적절한 규제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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