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저 ‘나’로…무지개교실에서 열린 특별한 검정고시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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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지난 30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의 한 사무실에서 '한 사람을 위한 특강'이 열렸다.

지현은 "저도 퀴어지만 트랜스젠더는 아니라서 무지개교실에 와서 서로 교류하는 법을 배운다"며 "일단 만나보면 서로 이해하게 된다"고 말했다.

린은 "알고 혐오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 몰라서 혐오하는 사람도 있다"며 "우리 존재가 더 알려지면 혐오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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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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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무지개교실에서 지현(22)이 도덕을 가르치며 웃고 있다. 우혜림 기자

‘내’가 그저 ‘나’로…무지개교실에서 열린 특별한 검정고시 특강

입력 2026.03.31 14:29

  • 플랫팀 기자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지난 30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의 한 사무실에서 ‘한 사람을 위한 특강’이 열렸다. 도덕 수업을 맡은 지현(22)이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사람이 누굴까요?” 린(17·가명)이 볼펜을 쥔 손을 꼼지락거리며 머뭇대자 지현은 칸트의 머리 모양을 짚었다. “이 롤빵 머리를 기억해주세요!” 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30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무지개교실에서 지현(22)이 도덕을 가르치며 웃고 있다. 우혜림 기자

지난 30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무지개교실에서 지현(22)이 도덕을 가르치며 웃고 있다. 우혜림 기자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하루 앞둔 이날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위한 배움터 ‘무지개 교실’을 찾았다. 차별과 혐오 속에서 ‘부적응자’로 불리던 이들은 이곳에서 그저 ‘나’로 머물고 있었다.

무지개교실은 시민단체 ‘노동·정치·사람’과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 모임 ‘튤립연대’가 공교육 바깥의 성소수자 청소년을 위해 만든 교육 공간이자 커뮤니티다. 자습실을 운영하고 검정고시 특강이나 교양 수업도 연다. 이날은 오는 4일 검정고시를 앞둔 린을 위해 도덕과 한국사 수업을 진행했다. 트랜스젠더인 린은 지난해 학교를 그만두고 ‘쟁이’가 됐다. 무지개교실에서 배움을 받는 사람은 ‘쟁이’, 가르치는 사람은 ‘탱이’로 불린다. 쟁이는 접미사 ‘-쟁이’에서 따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고, 탱이는 ‘담탱이’라는 말에서 따왔다.

지난 30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무지개교실에서 민지(24)가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우혜림 기자

지난 30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무지개교실에서 민지(24)가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우혜림 기자

수업 전 탱이들은 자신을 소개했다. 학벌·나이·성별 대신에 “돈이 안 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동네 도서관에서 4주째 연체인 사람” 같은 말이 오갔다. 쟁이와 농담을 주고받고 간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 이날 한국사 수업을 맡은 민지(24)는 “이곳에선 각자 삶의 현장에서 겪은 일을 공유하는 것도 하나의 배움”이라며 “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 무엇을 했는지 평범한 일상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을 드러내는 평범한 일은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에겐 쉽지 않다. 여성과 남성으로 나뉜 공교육 현장에서 이들은 화장실을 가거나 체육복을 갈아입는 일에서조차 벽에 부딪힌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발언도 상처로 남는다. 트랜스젠더 청소년 실태를 담은 책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오월의봄)를 보면 조사 대상 224명 중 68.8%가 교사의 혐오 발언을 경험했고 21.9%는 학업을 중단한 적이 있었다. 린도 학교에서 “동성애자는 죽여야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

지난 30일 서울 은평구 무지개교실에 입학증이 놓여 있다. 우혜림 기자

지난 30일 서울 은평구 무지개교실에 입학증이 놓여 있다. 우혜림 기자

무지개교실 구성원들은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이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교육 현장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만나야 한다고 이들은 말했다. 지현은 “저도 퀴어지만 트랜스젠더는 아니라서 무지개교실에 와서 서로 교류하는 법을 배운다”며 “일단 만나보면 서로 이해하게 된다”고 말했다. 린은 “알고 혐오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 몰라서 혐오하는 사람도 있다”며 “우리 존재가 더 알려지면 혐오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사를 좋아하는 린은 언젠가 사학과에 진학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이후의 미래에 대해선 자세히 그려본 적이 없다. “일단 살아있으면 좋겠다”고 린은 말했다. “저희도 사람이고, 살아있고, 살고 싶다”고 했다. 이날 린은 탱이와 함께 차근차근 도덕 문제를 풀었다. 탱이가 ‘롤빵 머리’를 가리키며 “이 사람 누구라고 했죠?”라고 물었다. “칸트?” “맞아요!” 탱이의 외침에 린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 우혜림 기자 saha@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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