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광화문 현판 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한글로 쓴 광화문 문구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설치하는 방안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31일 벌어졌다.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광화문 현판 토론회’에서다. 앞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월 국무회의에서 3층 누각 처마에 설치된 기존 한자 현판을 유지하면서 그 아래 한글 현판을 추가하는 방안을 보고한 바 있다.
찬성하는 측에선 한글 현판 추가 설치는 국가 정체성과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한글은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기본인데도 국가 상징 공간인 광화문에 한자만 있고 한글은 없다”며 “한글 현판 설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문화적 자주성을 세계에 드러내는 헌법적 가치의 실현”이라고 주장했다.
김주원 한글학회 회장도 경복궁이 한글이 태어난 곳이라며 “광화문에 한글에 대한 설명조차 없다. 한글은 단지 자랑스러운 문자를 넘어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했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도 “광화문 한글 현판 설치는 역사 왜곡이 아니라, 후손의 자각과 시대정신을 더해 역사를 완전체로 만드는 과정”이라며 “한글 현판은 대한민국 문화관광 콘텐츠의 화룡점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반대하는 측에선 역사왜곡과 국가유산 보존 원칙을 근거로 제시했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문화유산은 우리가 물려받은 과거의 흔적이다. 시류에 따라 문화유산을 변형하는 것은 과거의 물질 증거를 조작하는 것”이라며 “고증에 없는 한글 현판을 더하는 순간 복원의 기준 자체가 흔들리며, 문화유산이 현재의 취향과 정치적 메시지에 따라 변형되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도 “한자 현판 아래 한글 현판을 덧붙이는 것은 단순한 발음기호 표기에 불과하며, 오히려 한글의 주체적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현판 자체가 한문 문명권에서 나온 것이므로 한글 표기는 다른 형식을 찾는 것이 더 맞다”고 말했다.
홍석주 서일대 교수는 “경복궁 복원 사업은 1990년부터 고종 시기 경복궁을 기준으로 장기 복원을 이어온 사업”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한자 현판은 오류를 바로잡아가며 원형에 다가가는 과정의 결과물인데, 여기에 한글 현판을 추가하는 것은 오히려 원형에서 멀어지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문체부는 이번 토론회를 시작으로 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 설치에 대한 의견 수렴과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다음 달 초 문체부 누리집(www.mcst.go.kr)에 의견 게시판을 개설하고, 전문가 의견 조사와 대국민 설문조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광화문에는 1968년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글로 쓴 친필 현판이 걸렸다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원형을 복원한다는 이유로 한자 현판으로 교체됐다. 이후 2023년 10월 균열이 간 기존 한자 현판을 떼어내고, 검정 바탕에 금색 글자로 쓰인 지금의 한자 현판을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