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0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주의 마음을 듣다’ 열두번째 타운홀미팅에 참석해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중요한 건 동물이 인간처럼 이성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고통을 느낀다는 점”이라는 언명으로도 유명하다. 현대 ‘동물권’의 토대라 해도 무방할 이 말에서 ‘행복 총량의 법칙’인 공리주의가 당대에 ‘정의’일 수 있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부자든 가난하든 모든 존재의 고통·쾌락의 가치지분을 동일한 ‘1’로 본 그 평등성이다. 그 바탕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윤리적 정의가 탄생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0일 제주 타운홀 미팅에서 “정치라고 하는 게 잘하기 경쟁이고 중요한 기준은 다수 국민의 최대 행복”이라며 공리주의를 호명했다. “국민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이념, 가치, 개인적 성향이 뭐 중요하겠느냐”고도 했다. 여권 정치인을 가치 중심 A그룹, 이익 중심 B그룹 등으로 분류한 유시민 작가의 ‘ABC론’이 촉발한 갑론을박에 이 대통령도 뛰어든 것이다. 집약하면 ‘도대체, 정치란 무엇인가’를 묻는 논쟁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먹사니즘’으로 대변되는 이 대통령 ‘실용론’의 기반을 감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는 현실”이란 항변처럼 ‘현실정치=성과’라는 결과주의적 정치관이다. 이처럼 ABC 논쟁은 ‘실용’ 노선을 둘러싼 갑론을박으로도 비친다.
하지만 ‘무엇이 결과인가’를 묻는다면 논쟁은 다시 본질로 돌아간다. 사람마다 행복에 관한 규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이, 부의 증식이 행복인가? 국가데이터연구원의 ‘한국의 지속가능발전(SDG) 이행보고서 2026’에서 보듯 부가 커져도 빈부 격차·성평등·재생에너지는 후퇴하는 현실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것들은 행복이 아닌가.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존 스튜어트 밀)는 ‘질적 공리주의’는 행복 정의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역설적 증거일 수 있다.
논쟁은 ‘대통령은 행정가여야 하는가, 정치인이어야 하는가’로 진전될 수 있다. 실용에는 이념이 없다고 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 표나는 것으로 오인돼서도 곤란하다. 그건 ‘효율’에 다름 아닌데, 행정가의 실용만으로 장기적 미래를 도모하기는 힘들다. 바로 행정가와 정치 지도자가 구분되는 지점이다. 정치는 성과를 만드는 것만 아니라, 성과를 정의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