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목구어(緣木求魚).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굳이 하려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게 국어사전의 풀이다. 일반적인 용례를 반영했겠지만, 원래 사용된 의미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물고기를 잡겠다는 목적은 나쁜 게 아니고 ‘도저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단지 그 목적을 위한 방법으로 나무에 올라가는 게 문제이고, 잘못되었음을 일러주어도 ‘굳이 하려’ 하는 태도는 더 문제다.
맹자는 제나라 선왕을 만난 자리에서 선왕이 사지로 끌려가는 소를 불쌍하게 여긴 사례를 언급하며, 그런 마음을 지녔으니 왕 노릇 할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고 추켜세웠다.
인정을 받고 기뻐하는 선왕에게, 소를 향한 연민이 백성을 위한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며 맹자가 불쑥 물었다. “왕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아랫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다른 나라들과 원한을 맺어야 기쁨을 느끼십니까?”
당황한 선왕은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손사래를 치며, 전쟁을 즐기는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이루려는 목적이 있어서 그렇다고 답한다. 천하의 패권을 잡는다는 목적을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며 전쟁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라는 항변이다. 이 대목에서 맹자가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며 든 비유가 바로 연목구어였다. 맹자가 대안으로 제시한 더디고 어려운 왕도정치의 방법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던 선왕은 이렇게 물었다. “저의 방법이 연목구어라고 할 만큼 심한 것입니까?” 맹자는 연목구어는 목적을 이루지 못할 뿐 후환은 없지만, 전쟁을 통해 목적을 이루려 하면 반드시 후환이 있다는 엄중한 경고로 답했다.
이루려는 목적이 비핵화나 독재 정권 교체 따위의 명분이든지, 자못 의심되는 갖가지 경제적 이익이든지, 지금 미국이 벌인 전쟁이 그 어느 목적을 이루기에도 얼토당토않은 방법이라는 점이 이미 입증되고도 남았다. 하루속히 나무에서 내려오는 것만이 그나마 후환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더구나 그 후환을 장본인들뿐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겪어야 하는 고약한 상황임에랴. 두보를 따라 ‘상춘(傷春)’을 시름겹게 읊조릴 수밖에 없는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