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운동선수들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예스맨>에서 재능과 노력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놓고 토론을 했다. 농구 선수 출신 하승진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신체 조건을 타고났기에 농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며, 키와 같은 하드웨어는 넘어설 수 없는 재능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남일은 박지성을 어릴 때부터 지켜봤는데, 눈에 띄지 않던 선수가 엄청난 노력으로 재능을 넘어선 사례라고 소개했다. 각 종목에서 톱클래스였던 선수들조차 이 질문 앞에서 모두 고민을 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솔직히,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 역시 기본적으로는 특출난 재능을 타고난 선수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단계에서 도저히 넘을 수 없어 보이는 재능 앞에서 좌절을 경험했을 것이다. 동시에, 지독한 연습으로 재능의 벽을 뛰어넘는 사례 또한 지켜봤다. 그렇기에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기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조차 이러하니,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맞는지, 재능은 있지만 그저 어느 정도 수준에 그칠 뿐은 아닌지, 끝까지 버티며 노력하면 빛을 볼 수 있을지 끊임없이 묻게 된다. 특히 평생을 좌우할 직업을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타고난 재능의 크기에 끈기와 노력이라는 시간의 길이를 변수로 놓고 하나의 방정식을 풀어낼 수밖에 없다.
재능과 노력을 둘러싼 논쟁에서 20세기 초반까지는 선천적 재능을 중시하는 경향이 우세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인지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손의 체계적 연구를 통해 ‘의도적 연습’이 오랜 시간 축적될 때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강한 지지를 받았다. 아무래도 타고난 재능 앞에서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보다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위로도 되고 힘도 된 덕분이리라.
최근에는 재능과 노력의 상호작용을 더 중요하게 보는 시각이 있다. 오늘날 재능은 처음부터 뛰어난 능력이라기보다, 어떤 일에 호감을 느끼고 남보다 쉽게 일정 수준 이상을 해내는 능력으로 이해된다. 이 덕분에 출발 단계에서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잘하고, 비교적 빠르게 중급 수준에 도달한다. 좋아하는 일이기에 남들보다 의욕적으로 연습하고 재미없는 훈련 과정을 견뎌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재능과 노력의 결합이 최고 수준에 도달할 가능성을 높인다.
그렇듯 처음 시작할 때는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재능의 지분이 큰 것 같다. 좋아하고 잘하는 만큼 눈에 띄는 성과로 이어지기 쉽다. 여기에 성실성과 끈기는 재능의 공통된 요소로 봐야 한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초기 단계를 넘어 전문적인 수준에 이르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지루한 연습을 견뎌내기 어렵다. 여기에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는 마음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마지막 도달은 타고난 재능의 사이즈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농구에서 키가, 과학에서 추론능력, 예술에서 상상력의 비범함이 갖는 힘은 보통과 우월의 차이를 가른다. 모두가 오래 노력한다고 톱클래스가 될 수 없는 이유이고 세칭 ‘일만시간 법칙’의 한계가 이 부분에 있다.
무언가를 시작했다면, 그 일을 좋아하고, 쉽게 중급 수준까지 갈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이는 재능이 있다는 증거로, 지속적인 연습과 수련의 시간을 견뎌낼 가능성도 올라간다. 이후에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성실함과 쉽게 지치지 않는 끈기 역시 재능의 공통분모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다음, 버텨낼 정도만 되면 뭐라도 될 것이란 낙관적 기대도 잊지 말자. 이렇게 보면, 지금 자신의 영역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다면, 실은 상당한 재능과 노력의 결과물이 아닌가 할 만하다.
최근 나는 책을 또 한 권 냈다. 내게 글쓰기는 재능일까, 아니면 노력의 산물일까.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