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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추경, 속도가 곧 민생이다

입력 2026.03.31 20:00

중동발 전쟁의 영향이 우리 경제를 직격하고 있다. 이번 ‘전쟁 추경’을 논함에 있어 예산의 규모보다 더욱 절실한 가치는 ‘속도’다. 외부 충격이 국내 경제의 취약한 틈새를 파고들기 시작한 상황에서, 정부 대응이 반박자만 늦어져도 그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기 때문이다. 현재 국제 유가의 가파른 상승세는 국내 유통 구조와 맞물려 서민 생활 물가를 올리고 있다. 이는 개인의 교통비 및 유류비 문제를 넘어 물류비 폭등과 생필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취약계층의 생계를 압박하는 악순환을 만들 것이다. 비용은 치솟고 생산은 위축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이미 우리 경제의 문턱을 넘어섰다.

이런 위기 국면에서 정부가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며 대응을 미루는 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정책적 실책일 수 있다. 경제적 충격이 예상되었을 때, 그 피해가 산업 전반과 고용 시장으로 전이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방어막을 쳐야만 재정 투입의 가치가 산다. 이번에 편성된 26조원 규모의 추경은 바로 그러한 긴급 구호적 성격을 띠고 있다. 고유가 부담 완화에 10조원, 민생 안정에 2조8000억원, 산업 피해 최소화에 2조6000억원, 지방재정 보강에 9조7000억원을 배정한 내역은 선명한 지향점을 보여준다. 인위적으로 경기 지표를 끌어올리려는 확장 재정이라기보다, 전쟁이라는 돌발 변수가 초래한 비용 충격을 재정이 흡수해 서민 경제의 연약한 고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대응 예산인 셈이다.

시급성을 뒷받침하는 지표들은 매우 엄중하다. 불과 한 달 사이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30달러를 돌파하며 폭등했다. 이러한 에너지 가격의 폭등은 소상공인들의 체감 경기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0.4%포인트 하향 조정한 것은 글로벌 사회가 우리 경제의 취약성을 경고하고 있다는 증거다. 일단 충격이 소비절벽으로 이어지기 시작하면, 그때는 몇배의 재정을 쏟아붓더라도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번 추경의 성패는 결국 얼마나 빨리 현장에 도달하느냐는 시의성에 달려 있다.

이번 추경안이 정책적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지원 방식의 정교함에도 있다. 특히 4조8000억원 규모의 고유가 피해지원금은 대체로 잘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모든 국민에게 동일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하되 지역과 계층에 따라 지원액을 차등화했다. 인프라가 열악하고 물류비 부담이 큰 비수도권과 인구감소지역에 더 두꺼운 혜택이 돌아가도록 설계한 것은 재정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고민의 결과물이다.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 생계 위협을 받는 층에 우선적으로 재원을 투입하고, 이후 건강보험료 데이터를 활용해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구조는 보편과 선별의 소모적인 논쟁을 실용적으로 매듭지은 사례다. 작년에 시행했던 민생회복지원금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물가 자극 우려 역시 세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모든 재정 지출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고소득층까지 포함한 현금 살포는 수요를 견인해 물가를 밀어올릴 수 있지만, 이번 추경처럼 취약계층의 필수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은 물가 파급효과가 제한적이다. 실제로 석유 최고가격제 보조금이나 대중교통 환급 확대 등은 소비를 새로 창출하는 예산이 아니라, 외부의 물가 충격을 재정이 완충해주는 ‘흡수 예산’이다. 재원 조달 방식 또한 대규모 적자국채 발행 없이 초과 세수를 활용하고 오히려 국채를 일부 상환함으로써 재정 건전성이라는 대원칙을 고수했다. 한국은행도 이번 추경이 물가 상승에 제한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제 논의의 초점은 재정 투입 여부라는 원론을 넘어, 실기했을 때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얼마인가로 옮겨가야 한다. 외부 충격으로 인한 유가 폭등은 시간이 흐른다고 자연히 치유되는 문제가 아니다. 대응이 늦어질수록 사회적 약자와 소상공인이 짊어질 고통은 감내하기 힘든 수준으로 증폭될 뿐이다. 나중에 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들여 무너진 경제 생태계를 복구하려 들기보다, 충격의 파고가 본격화되는 지금 신속하고 강력한 방어벽을 쳐야 한다. 민생의 골든타임은 결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번 추경의 핵심은 규모보다 속도에 있으며, 정부와 정치권은 현장의 절박함을 최우선으로 삼아 재정의 온기가 서민의 삶에 즉각 도달하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망설임 없는 결단과 빠른 집행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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