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2가와 송현동, 안국동 사이를 잇는 인사동길이 있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전시를 접할 수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거리다. 갑오개혁 당시 행정개편으로 ‘인사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이 일대는 관가이자 중인들의 주거지였다. 나는 그곳의 작은 표지석을 지날 때마다 조선시대 화원들의 자취를 떠올린다. 어디선가 김홍도가 홀연히 나타날 것만 같다.
인사동에 고미술 가게와 헌책방이 들어선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조선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조선시대를 지탱하던 사대부 계급은 몰락했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양반들은 도자기와 고서화, 고가구 등 자신들이 소유한 골동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를 매입해 장사를 하던 일본인들이 북촌 인근 인사동으로 몰려들면서 이곳에 상점들이 형성됐다.
해방 이후 1960~1970년대는 인사동이 성시를 이룬 시기였다. 그러나 위작 판매 논란이 이어지면서 대다수 가게들이 장안동으로 이주했다. 그 자리에 화랑과 표구점, 서화 도구 상점, 전통음식점과 찻집 등이 들어서며 미술인과 애호가,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인사동에는 전통문화 보존과 지역 활성화를 위해 1987년 설립된 인사전통문화보존회가 있다. 정부도 1988년 이 일대를 ‘문화의 거리’로 지정했다. 이후 보존회 주관으로 해마다 인사동전통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최근 이 단체의 장이 새로 선출됐다. 인사동에서 오랫동안 화랑이나 고미술 가게를 운영해온 이들이 주로 맡아온 자리다. 신임 회장은 “급변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도 인사동의 본래 가치를 지키고 문화지구로서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특히 전통문화 정체성 확립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며, 고유 콘텐츠 발굴을 통해 문화와 예술이 살아 있는 거리로 재정립하겠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문화 기획으로 국내외 방문객에게 차별화된 문화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나는 지금의 인사동을 전통문화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명맥을 잇는 고미술 상점과 서화용품 가게, 표구사가 있긴 하지만 예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좋은 화랑들도 거의 빠져나갔다. 지금 인사동에서 의미 있는 전시를 보기는 쉽지 않다. 대관 화랑이 주를 이루고, 그곳에서는 주로 아마추어 작가들의 전시가 열린다. 그 결과 인사동은 식당과 국적 불명의 조악한 상품이 범람하는 곳이 되었다. 관광객들은 그저 음식점과 찻집을 들락거리고,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을 소비할 뿐이다. 바로 옆에 있는 고미술품 가게나 화랑을 찾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이런 형국에 과연 인사동에 전통문화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가? 무엇이 전통문화이며, 또 그것을 어떻게 체험하게 해준단 말인가? 너무 많은 난제가 이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선 인사동에서 고완품을 취급하는 이들은 물건을 선보이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뒤죽박죽 쌓아두는 대신 전시관의 작품처럼 보여주는 감각이 필요하다. 작품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국문과 영문으로 제공하고, 가격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가품은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정부 역시 문화유산 관련 제도를 손질해 국보나 보물이 아닌 경우 외국인이 구매해 갖고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고미술 시장이 활성화되고 인사동을 찾는 발걸음도 늘어난다. 인사동 보존회 또한 그럴듯한 청사진을 내세우는 대신 인사동을 찾는 방문객에게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박영택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