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월 11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공격을 받은 태국 벌크선 ‘마유리 나리(Mayuree Naree)’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산 원유에 대한 한국의 구조적 의존이 새로운 위기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단기적으론 호주·미국 등지를 활용하고, 중장기적으로 운송비 지원 등을 통해 원유 도입선 다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국책연구원의 분석이 나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1일 보고서 ‘우리나라의 중동산 원유 의존 배경과 과제’를 통해 “중동 전쟁으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시도할 경우 중동 지역에서만 하루 1000만 배럴 수준의 공급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외연은 최근 글로벌 화석연료 투자가 전반적으로 줄고 있어, 공급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주요 산유국이 급격히 생산을 늘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동산 원유를 주로 수입해 온 아시아 국가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도입선 다변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한국의 중동 의존 구조가 단기간에 바뀌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도입선 다변화를 추진해왔음에도 대중동 원유 수입 비중은 2015년 82.3%에서 2021년 59.8%까지 낮아졌지만, 2023년 71.9%로 반등한 이후 7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의존도가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 배경에는 우선 지리적 이점이 있다. 지난해 기준 중동산 원유의 수송 단가는 배럴당 1.87달러로, 비중동 지역 평균(2.99달러)보다 1.12달러 낮다. 운송 기간도 약 20일로 짧아 안정적인 공급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국내 정유 시설이 중동산 특유의 중질·고황 원유 처리에 맞게 설계돼 있어 단기간 내 도입선을 바꾸기 어렵다는 점도 의존도를 고착화하는 요인이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막히면서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오히려 높아진 것도 외부 변수로 작용했다.
이처럼 구조적 취약성이 뚜렷한 만큼, 대외연은 단계별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기적으로는 경제성보다 공급 안정성을 우선해 물량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호주(25.1%), 앙골라(20.9%), 말레이시아(11.5%), 미국(8.0%) 등 한국 석유제품 수입 의존도가 높은 산유국을 활용해 협상력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제안했다.
중기적으로는 새로운 도입처 발굴 등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거리가 먼 중남미나 아프리카산 원유 수입을 늘릴 수 있도록 추가 운송비에 대한 정부 지원 한도를 높이고, 금융·보험·장려금 등으로 지원 범위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본적인 해법은 결국 에너지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대외연은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구성 전환을 통해 원유 자체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