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리지 웨이드 지음 | 김승욱 옮김
김영사 | 452쪽 | 3만2000원
아포칼립스는 요한계시록의 영어명으로, 종말이나 대재앙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그래서인지 ‘아포칼립스’라고 하면 어둡고 파괴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생각을 비틀어 아포칼립스를 끝이 아닌 변화로 해석한다. 종말이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시작의 기회라는 것이다.
한 문명이 저문다는 것은 그간의 생활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뜻한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길을 택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억압적인 구조가 해체되며, 유연하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도 한다.
이집트 문명의 몰락이 그 사례 중 하나다. 엄격한 계급사회는 이집트 고왕국이 통일된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가뭄이 계속되며 사회 시스템에 금이 갔다. 사람들이 작은 마을로 흩어졌고, 강력한 위계질서가 무너졌다.
중세시대 흑사병도 마찬가지다. 학자들은 흑사병 창궐 이후 노동계급의 건강과 불평등이 극적으로 개선됐음을 수도원 유골 발골을 통해 밝혀냈다. 흑사병 창궐은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이었지만, 살아남은 이들이 사회의 체질을 개선하며 전환점으로 만든 것이다.
아포칼립스는 옛날 옛적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세상은 끝나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너무 늦었으며 정치의 극단화, 경제적 불평등, 새로운 병원균의 출현 등이 한데 섞여 아포칼립스로 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아포칼립스를 겪으며 이 책을 집필했다. 아포칼립스와 함께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야 하는 시대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만 아포칼립스를 받아들인다는 건 최악을 예상하며 체념하는 게 아니다. 지난날의 상실에 슬퍼하되 앞으로의 창조를 상상하며, 두려움과 희망을 동시에 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