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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봄

입력 2026.04.02 20:13

수정 2026.04.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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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얼거리는 사진 한 장]어머니의 봄

10여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봄이 되면 고향엘 가고 싶어 하셨다. 연세가 드신 후 여러 사정 때문에 서울 근교에 내가 모시고 있었는데, 봄이 되면 “집에 가고 잡다”고 하셨다.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어의도라는 고향 섬에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고 목포나 광주에 내려서 시외버스를 타고 지도읍엘 간다. 그다음에 택시나 버스로 지도의 북쪽 참섬 선착장에 가 나룻배를 탄다. 내려서는 고향에 살고 있는 동생이 몰고 온 경운기나 트럭으로 집에 갔다. 한마디로 하루 종일 걸리는 머나먼 길이다.

긴 여행 끝에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짐들을 대강 던져두고 바구니, 칼, 비닐 자루 등을 챙겨 헌 유모차에 싣고 동네 야산으로 향했다.

헌 유모차는 쓸데없는 것을 떼어내고 뼈대만 남겨서 허리가 불편한 농어촌 여성 노인분들이 유용하게 쓰는 도구이다. 어머니도 그러했다. 유모차를 밀고 언덕을 올라 꽃이 져가는 벚나무 아래 세워놓고 어머니는 산으로 들어가셨다. 사진은 오래전에 찍은 어머니가 세워놓은 헌 유모차와 벚꽃 그리고 멀리 바다가 보이는 고향의 봄 풍경이다.

어머니가 산에 가서 하신 일은 고사리를 꺾는 것이었다. 새순이 이제 막 돋아 꼬부라진 모양이 아름다운 자연산 고사리들은 산에 지천이었다. 그 고사리들을 꺾어 그냥 팔기도 하고 말려서 팔기도 했다. 제법 쏠쏠한 벌이가 되어서 봄이면 동네 사람들은 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고사리를 사러 도시에서 온 상인들도 있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고사리를 데쳐 말렸다 무침을 해먹으면 정말 맛있었다. 단언컨대 전국 최고의 맛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고향 일대의 섬에는 도시에서 차를 타고 몰래 고사리를 꺾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어서 갈등이 있었다. 일종의 고사리 도둑질이라고 할 만한 일들이 자주 벌어져서 동네마다 나름의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몰래 꺾어가는 일을 다 막을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즐거움은 고사리를 꺾는 일 자체에 있었던 듯하다. 그 밖에 쑥이나 다른 나물들을 캐는 일도 그러했다. 섬 이곳저곳을 누비면서 돋아나는 새싹들과 피어나는 꽃들을 보고 부풀어 오르는 봄 흙냄새를 맡는 것 자체가 어쩌면 어머니에게는 봄을 즐기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이고 허리야” 하면서도 날마다 산에 올랐던 것은 어머니에게는 일종의 봄을 즐기는 행위이자 옛날식으로 말하면 ‘상춘곡’에 가까웠다.

어머니의 봄 즐김의 다음 순서는 바닷가였다. 물때를 봐서 바닷가에 나가 초록빛 파래를 긁고 고둥, 소라, 돌게 등을 잡아와서 반찬들을 만들었다. 쌉싸름하게 감도는 신선한 파래무침과 돌게장의 맛은 내 몸에 배어 봄이 되면 절로 입맛을 다시게 된다.

지구 곳곳이 전쟁이라 이 봄이 봄인가 싶지만 그래도 봄은 왔다. 오래된 농경 채집 문화의 전통에 따라 어느 누군가는 바구니를 챙겨 들고 몸으로 봄을 즐기러 들과 산으로 갈 것이다. 도시 사람들은 꽃구경으로 봄을 맞지만 진짜 봄맞이는 그래야 하는 거 아닐까 싶다. 물론 나는 상상만 할 뿐 시도도 하지 못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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