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24일 탈모약과 위고비의 성지 서울 종로5가 인근 약국 밀집 지역을 지나고 있다. 이준헌 기자
탈모 치료 건강보험 급여화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도입 임박설’과 정부의 ‘전면 부인’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재명 대통령이 탈모 급여 확대 검토를 언급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간 보기’식 여론전이 반복되며 탈모 급여화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일 ‘정부가 안드로겐성 탈모(M자형 탈모 등)를 건강보험 적용 범위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정치권발 보도에 보건복지부가 즉각 “확정된 바 없다”는 해명 자료를 내며 진화에 나섰다. 올해 1월 ‘정부가 건강바우처에 탈모 치료를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내용이 알려졌을 때도, 복지부는 “바우처와 급여화는 결이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정치권발 도입설이 불거질 때마다, 복지부가 선을 긋고 있다.
논란이 반복되는 배경에는 탈모가 지닌 의학적·법적 딜레마가 있다. 현행 제도상 탈모는 원인과 형태에 따라 질병코드 L63~L66 네 가지로 분류된다. 이 중 건보 혜택을 받는 것은 자가면역 질환 등 병적 원인이 명확한 원형탈모(L63) 등에 국한된다.
반면 정치권 등에서 요구하는 급여 확대 중심에는 남성 M자형, 여성 정수리 탈모 등을 포함한 ‘안드로겐성 탈모(L64)’가 있다. 문제는 L64가 질병과 미용(노화)의 모호한 경계에 있다는 점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은 신체의 필수 기능 개선 목적이 아닌 경우 비급여로 규정하고, 노화에 따른 탈모도 여기에 명시하고 있다. 안드로겐성 탈모를 급여화하려면 이를 ‘필수 기능 개선’으로 재정의하거나 예외를 두어야 하는데, 탈모가 이 문턱을 넘으면 주름이나 기미 치료, 단순 비만 시술 등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탈모 급여화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누리꾼을 중심으로 “못생김도 질병으로 인정하고 국가에서 성형수술비도 보장해 줘라”는 냉소가 나오는 이유다.
“탈모는 생존이냐, 미용이냐”
이러한 논란에도 급여화를 찬성하는 목소리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탈모를 단순한 미용이나 노화 현상으로 치부하기엔 당사자가 겪는 심리적 고통과 취업 등 사회적 불이익이 크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이 대통령도 “옛날에는 미용 문제라고 봤는데 요즘은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탈모 진료 환자는 2020년 23만4039명에서 2024년 23만7332명으로 증가했다. 2024년 기준 연령대별 비중은 20대 18.6%, 30대 21.5%로 20~30대가 전체의 40.1%를 차지한다. 또 서울 성동구, 충남 보령시 등 일부 지자체가 선제적으로 청년 탈모 약값 지원에 나서면서, 거주지에 따른 ‘불평등’ 문제가 있다는 점도 주요 논거로 제시된다.
2024년 기준 성별, 연령별 탈모 환자 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건보 ‘재정 건전성’과 ‘우선순위’ 문제다. 탈모 급여화에 따른 재정 추계부터 크게 엇갈린다. 본인부담률 30~50%를 가정할 경우 건보 부담이 연 1197억~1676억원 안팎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 있는 반면, 의료계 일각에선 잠재 수요 유입까지 반영하면 연 1조원에서 최대 3조6000억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추산도 나온다. 이는 적용 대상과 본인부담률, 급여 기간·횟수, 실제 수요를 어디까지 잡느냐에 따라 탈모 급여화가 건보 재정에 직격탄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붕괴’ 상황에서 탈모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의료 정책 우선순위를 훼손한다는 주장도 강하다. 환자단체들은 “암 환자들은 신약에 건보 적용이 안 돼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중증 질환 급여화를 먼저 추진하는 것이 건보 원칙에 부합한다”는 입장이다. 건강보험 혜택에서 소외된 ‘청년 정책’이라는 주장 역시 2024년 심평원 통계 기준 탈모 진료 환자가 가장 많은 연령대는 40대(22.2%)인 만큼 설득력이 약하다는 평가다.
2024년 기준 탈모 환자 1인당 진료현황.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탈모의 정치화’···복지부는 “검토 중”만 되풀이
탈모치료 급여화를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고 있지만 복지부는 “정부는 청년 탈모 치료에 대한 급여 적용을 확정한 바 없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의료적 필요성과 비용효과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지원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추진도 포기도 하지 못한 채 4개월째 공전 중인 셈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년들 입장에서 탈모는 연애나 취업 등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절실함이 매우 큰 사안”이라며 “정치권은 비판 여론을 감수하더라도, 확실하게 한 표를 끄집어 낼 수 있는 카드로 판단해 필요할 때 마다 끄집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은 던지고, 막상 수조 원대 재정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복지부는 ‘검토 중’ 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기형적인 구조가 6월 지방선거 이후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