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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부활절을 기다리는 건 초콜릿 때문만이 아닐 거야

입력 2026.04.04 15:00

  • 최윤정
벨기에인의 정체성과 다산의 의미를 담아 부활절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토끼 초콜릿. 픽셀즈

벨기에인의 정체성과 다산의 의미를 담아 부활절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토끼 초콜릿. 픽셀즈

벨기에의 어느 정원. 아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잔디밭을 뒤지고 있다. 보물찾기라도 하는 듯 분주하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숨겨진 초콜릿 달걀을 찾는 중이다. 하나라도 더 찾으려는 경쟁이 꽤 치열하다. 초콜릿이 걸린 만큼 아이들에겐 너무나 진지한 시간이지만, 어른들에게도 막간의 휴식을 제공하니 피차 윈윈이다. 이 보물찾기는 의미를 알든 모르든 모든 연령층이 즐긴다는 점에서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4월 부활절 기간, 벨기에와 프랑스, 네덜란드 이 풍경의 기원은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회에서는 부활절을 앞둔 ‘성주간’의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종을 울리지 않는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그 침묵의 시간에 사람들의 상상 속 또 다른 이야기가 덧입혀졌다.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종들은 이 기간에 로마로 날아가 예수 부활의 소식을 듣고, 부활의 상징인 ‘달걀’을 통해 그 기쁨을 온 사방에 뿌리며, 힘차게 종을 울리며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세월이 흐르면서 진짜 달걀은 초콜릿 달걀로 바뀌었고, 요즘 시즌의 주인공이 되었다. 곰이 마늘을 먹고 웅녀가 되어 단군을 낳았다는 우리나라 신화같이 ‘침묵의 종’ 이야기 역시 대담한 전개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현대에 이른 지금, 전설과 자본주의가 맞물려 한층 더 완성도 있게 살아 있다는 부분이랄까.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를 꼽으라면 대개 설날과 추석을 떠올린다. 두 명절은 계절의 변곡점에 놓여 있으면서 설날은 한 해의 시작을, 추석은 수확의 마무리를 상징하곤 했다. 벨기에에서는 그 역할을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 한다. 일상의 흐름을 나누는 중요한 축을 종교적 전통에 두고 삶의 주기를 구분해왔다. 부활절은 말 그대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다. 죽음 후 부활이라는 서사는 종교를 떠나 생각해도 충분히 상징적이지만, 서유럽의 가톨릭 문화권 국가들, 특히 벨기에 남부 지역에서는 더욱 큰 의미를 지닌 날이었다.

오늘날 벨기에는 예전에 비해 가톨릭의 종교적 의미가 다소 옅어졌다고는 하나, 아직 학교나 병원, 지역 축제, 일상의 식문화 등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침묵의 종에서 비롯된 이야기와, 생명과 다산을 상징하는 달걀과 토끼는 벨기에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초콜릿과 결합해 부활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예배를 마친 뒤 아침 겸 점심을 먹던 관습은 오늘날 ‘부활절 브런치’로 발전해, 종교와 무관한 사람들조차 즐긴다. 빵과 반숙 계란, 샤퀴테리, 치즈 등이 풍성하게 놓인 식탁 위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시간이 흐르고, 겨우내 무채색이던 거리에 파스텔톤의 부활절 장식이 더해지는 모습을 보면, 믿음의 유무와 관계없이 사람들은 여전히 그 리듬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4월 초에서 중순이면 벨기에 전역을 비롯해 유럽 여러 나라에서 봄방학, 이른바 부활절 방학이 시작된다. 이 시기 많은 사람은 한 해의 마지막 스키를 타기 위해 알프스로 떠나고, 또 다른 이들은 따뜻해진 봄 햇살을 따라 북해로 발걸음을 옮긴다.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이 맞물리는 시기. 부활절은 종교적 의미를 넘어 계절의 감각과도 자연스럽게 겹쳐 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의 축복은 수천 년 전부터 이어지는 듯하다. 다른 계절이 아닌 하필 봄에 다시 찾아오신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모른다. 우리에게 초콜릿을 주시고, 스키 여행과 휴식도 주시며, 마치 봄처럼 또 다른 시작과 가능성을 보여주시나니, 역시 예수님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부활과 희망의 아이콘이다.

문득, 신성한 그의 고난과 슬픔을 우리가 이렇게 소비해도 되나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불자이긴 하나, 인류를 향해 걸어온 그의 사랑과 자비, 이 순간만큼은 하느님 아버지 예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최윤정

[나는 마담 부르주아]아이들이 부활절을 기다리는 건 초콜릿 때문만이 아닐 거야

‘부르주아’라는 성을 물려준 셰프 출신 시어머니의 자취를 좇으며 현재 벨기에에서 여행과 요리를 엮어내는 팝업 레스토랑 ‘tour-tour’를 기획·운영 중이다. 인스타그램 @choirig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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