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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전쟁의 시간, 언론은

입력 2026.04.05 19:52

수정 2026.04.05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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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진실이었다.” 아서 폰손비의 말처럼, 두 차례 세계대전 당시 언론들은 애국주의와 승리의 서사에 기반한 선전기능을 수행했다. 한국전쟁에서도 이러한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베트남전쟁 초기 관성같이 정부를 지지했던 미국의 언론들은, ‘테트 공세’ 이후 승리가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에 정부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1971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펜타곤페이퍼를 폭로했다. 전쟁의 빌미가 된 통킹만 사건이 조작됐고, 미국이 패배의 가능성을 알고도 냉전전략 등으로 전쟁을 계속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언론은 전쟁의 본질보다 정부의 거짓말과 패배의 징후, 충격적인 사건들에 집중했다. 퓰리처상을 받은 ‘네이팜탄 소녀’의 사진으로 대표되는 종군기자들의 활약으로 전쟁의 참상은 미국 가정까지 전달됐다. 언론은 전쟁을 비판했다. 그러나 전쟁의 성격은 충분히 비판하지 못했다.

1982년 포클랜드전쟁에서 BBC는 자국 군대를 아군이 아닌 영국군이라 했다. 적국인 아르헨티나 벨그라노함 희생자 가족들을 “인간의 피해”라는 시각에서 중립적으로 인터뷰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언론은 특유의 애국주의와 임베디드 저널리즘, 즉 군과 함께 이동하며 취재하는 방식 등으로 국가가 설계한 정보의 흐름을 많이 벗어나지 못했다.

걸프전에서는 전쟁보도의 금도와도 같던 전장 중심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1991년 다국적군이 폭격을 시작하자 전쟁은 초정밀성(Surgical Strike)을 자랑하는 전자전 무기들의 쇼케이스 같았다. 디지털방송을 선도하던 CNN은 24시간, 전쟁을 게임처럼 실시간 중계했다. 제한된 기자들만이 취재 가능한 풀시스템과 브리핑 중심의 취재환경에서 민간인 피해조차 시의성 있게 가시화되기 어려웠다.

2003년, 이라크전쟁은 알카에다와의 연계 의혹을 제기하며 대량살상무기(WMD)가 이라크에 존재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됐다. 9·11 테러로 애국주의적 분위기가 팽배했고 주요 언론들은 미국 정부의 발표에 의존했다. 이후, 이라크에 제기된 의혹들은 근거 없는 것으로 비판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정부 발표를 검증하는 데 실패했다고 공식 인정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에서는 정보전 현상이 강화됐다. 정보를 교란하고 심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적나라한 말싸움을 펼친다. 딥페이크, 미확인 뉴스, 실시간 드론영상 등이 확산되고 오픈소스 위성영상이 활용된다. 현실은 말에 의해 재구성되고, 사실보다 해석프레임들이 충돌한다. 기자들의 현장 접근은 제한된다. 연이어 터져 나오는 사건들과 검증 안 된 첩보들은 정밀한 논의를 어렵게 한다. 빠른 검증이 진행되지만 조작정보의 확산 속도를 무시하기 어렵다. 전쟁이 장기화하자 언론은 전쟁 주체들의 조변석개하는 입만 바라보는 듯하다. 이제 엑스나 텔레그램은 언론의 주된 취재원이다.

양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보도들은 일정한 차이를 보였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사건지향성이다. 전쟁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것처럼 보도되고, 가능한 한 현장보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전쟁 초기의 원인 보도는, 애매한 수준의 핵 위험이라거나 ‘네타냐후의 꼬드김’ 정도로 피상적이다. 심층분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건들을 따라가며 낮은 단계의 과정지향적 보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이기는 하나 베트남전이 부도덕한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은 성과이다. 그러나 본질을 찾을 수 있는 패권구조, 역사적 맥락, 장기전략, 군산복합체의 이해 등은 시의성 있게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다. “석유 때문이다”라는 한줄 평 같은 뒤늦은 보도는 그나마 심층적이다. 전쟁의 시간, 숙의의 공론장을 찾기 어려운 이유이다.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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