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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질문

입력 2026.04.05 19:55

수정 2026.04.0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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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시, 시의 세계]무거운 질문
네팔은 작고 작지만
나도 작고 작지만
나는 우상도 아니고
돌도 아니니
어떻게 나를 자로 잴 수 있을까

네가 나를 무시한다면
내가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얀 모자를 쓰고 있는 에베레스트와
즐겁게 노래하는 강들을
자연의 축복받은 이 나라를
저주는 누가 했나?

순교자도 많았는데
피의 강이 땅을 적셨는데
어찌 이 땅은 이리 메말랐는가?
깃털 같은 정치가들아
이 무거운 질문을 가슴에 담아라

(중략)

그대
이빨만 반짝이는 정치가여
검은 눈동자로 사진을 찍어라
네 얼굴에 찍힌 사진을 들여다보아라
- 두르가 랄 쉬레스타(1935~)

네팔의 국민시인 두르가 랄 쉬레스타는 1990년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직전 이 시를 썼다. 당시 네팔은 비렌드라 국왕의 장기집권으로 정치적 억압과 경제난이 심화되고 있었다.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천혜의 자연을 지닌 나라지만, 판차야트 체제의 현실은 참담했다. 시인은 “어찌 이 땅은 이리 메말랐는가?”라고 탄식하며 부패한 정치가들에게 이 무거운 질문을 가슴에 담으라고 요구한다. 민중의 삶은 외면한 채 “이빨만 반짝이는 정치가”에게 검은 눈동자로 사진을 찍어 스스로의 모습을 들여다보라고 말하는 이 시는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는 네팔어와 소수민족 언어인 네와르어로 시를 썼는데, 이러한 언어적 실천 자체가 저항의 방식이기도 했다.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그의 시와 가사는 민중가요로도 불리었다.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수립된 후에도 네팔의 정치 상황은 내전과 쿠데타 등으로 이어졌다. 작년 Z세대의 반정부 시위가 확산된 이후에 치러진 네팔 총선에서 개혁 중도 성향의 신생 정당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지만,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TV에 오르내리는 한국의 정치인들에게도 이 시를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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