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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에너지 공급망, 어디서 이을 것인가

입력 2026.04.05 19:58

명분이나 대의를 도무지 알 수 없는 중동전쟁으로 전 세계가 위기를 겪고 있다. 미국 패권의 국제 질서가 붕괴해 각자도생의 시대로 파편화하고, 각국이 기꺼이 서로의 공급망이 되어주던 경제 구조도 막을 내릴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당장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이동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에너지 공급난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전 세계에 큰 타격을 가하고 있다.

에너지 소비량의 94%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의 어려움도 말할 것 없다. 정부는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경계’ 단계로 격상하고 여러 대책을 내놨다. 법 제정 이후 사실상 사문화되었던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단기적으로 석탄과 원전의 활용도 높이기로 했다. 공공부문 차량은 2부제를 의무화했다. 단기적으로는 에너지의 가격 급등을 막으면서 사용량은 줄이는 대책을 내놓은 셈이다.

에너지 안보를 지키는 일은 단기적인 대책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이번 전쟁은 한국의 에너지 정책 방향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화석연료는 앞으로도 전통적인 주요 에너지원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재생에너지를 빠르게 늘리지 않고서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점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예전처럼 원활하게 돌아가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수입 의존도를 낮추지 않고서는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됐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한 지 4년 만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과 전쟁에 나서면서 지정학적 위기로 에너지 시장이 충격을 받는 상황도 잦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전쟁은 한국의 에너지 구조 전환에 중요한 기점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속도를 내지 못했던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힘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서다. 과거 걸프전이나 이라크전쟁 때와 비교해 전 세계 외교안보의 질서도, 기후위기의 심각성도 달라졌다. 우선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맹국 안보에 일정 부분 기여해왔던 미국의 역할을 더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또 온실가스 감축 속도가 지지부진하면서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 정도는 이미 파리협정 목표 수준을 위협하고 있다.

오랜 기간 안정적인 에너지원이라고 여겨졌던 석유 등 화석연료는 더는 안전한 수급을 보장하는 에너지원이 아니다. 한국처럼 석유나 천연가스가 나오지 않는 국가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2023년 “재생에너지는 진정한 에너지 안보, 안정적인 전력 가격, 지속 가능한 일자리 기회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며 “햇빛에는 가격 폭등이 없고, 바람에는 교역 차단도 없다”고 말한 것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총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10.6%다. 재생에너지가 처음으로 두 자릿수 비중을 차지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35%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그사이 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고 있다. 지난해 5월 OECD 전체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41.7%로 사상 처음으로 화석연료(41.4%)를 앞질렀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가 더딘 데에는 재생에너지는 불안정하고 간헐적이어서 주력 에너지원으로 쓰기 어렵다는 인식, 정권에 따라 180도 뒤집혀온 재생에너지 정책의 정쟁화, 설비 및 송전망 등을 둘러싼 지역 갈등을 제대로 풀지 못한 점 등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작용해왔다.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에는 공감대가 높으면서도, 실제로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작업에 있어서는 머뭇거릴 때가 많았다.

지금의 에너지 위기는 선택을 미루는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기후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된 지 오래다. 국제 정세가 예상치 못한 국면으로 흘러가면서 ‘가장 싼 가격에 효율성’을 추구하던 에너지 시장은 ‘위기 때 흔들리지 않는 안보’ 차원의 자원이 됐다. 한국의 낮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감안할 때 단기간에 재생에너지의 입지가 급상승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러나 더 이상 화석연료는 싸지도, 안정적 공급을 약속하지도 못한다. 그 자리를 재생에너지가 채울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제는 재생에너지 전환을 정치적 선택이 아닌 국가 ‘인프라 구축’의 관점으로 재정의하고, 구체적 이행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서둘러 끌어내야 한다.

이윤주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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