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드라마에서 내과의사는 잘 등장하지 않거나, 등장하더라도 주인공의 반대편에 선 인물로 그려진다. 메스를 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주인공에게 냉정한 조언으로 제동을 걸거나, 능력과 정의감으로 질서를 무시하려는 순간에는 엄격한 원칙을 요구하는 일종의 ‘빌런’ 역할을 맡곤 한다. 그러나 종합병원 현실에서 그것도 중증질환을 담당하는 보통의 내과의사는 그런 빌런 역할을 수행할 여유가 없다.
이들은 환자와 관련된 대부분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며, 문제가 복잡할수록 경험과 정보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다. 내과 질환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듯 환자를 둘러싼 숙의의 시간 또한 길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형외과 수술을 위해 입원한 환자라도, 고령화 시대에는 여러 내과적 문제를 동시에 지닌 경우가 일반적이다. 드라마에서는 종종 생략되지만 이러한 내과적 소견은 치료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환자가 중증 상태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내과 중심으로 재편되고, 호흡기·소화기·순환기 등 다양한 협진이 필수적이 된다. 이처럼 의학에서 내과학의 위상은 법학의 민법, 철학의 인식론이나 형이상학에 비견될 만큼 중심적인 영역이다.
어느덧 벚꽃 필 무렵이다. 어떤 생태학자는 봄을 가장 잔혹한 계절이라 말한다. 동면에서 깨어난 포식자들은 소진된 자원을 보충하기 위해 얼어붙었던 생태계의 균형을 흔들며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한편,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는 존재들은 숨거나 피하고, 교섭과 연대를 통해 생존을 모색한다. 봄은 이처럼 전략적 신호가 무수히 포착되는 계절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를 원하는 사람들의 공약이나 언술이 쏟아지는 시기가 도래했다. 곳곳에 포스터와 현수막이 내걸리고, 처음 보는 얼굴들이 원색적인 옷을 입고 거리에 나와 운전자와 보행자들에게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인사를 건넨다.
정치를 하려는 이들의 노력과 각오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들 역시 자신의 인생 일부를 걸고 출사표를 던졌을 것이다. 다만 관심은 유권자의 선택에 있다. 요컨대 우리는 누구에게, 무엇을 보고, 무엇을 위해 표를 행사하는가. 훤칠한 외관, 귀에 솔깃한 말과 감정을 자극하는 공약, 내 편이 되어 싸워줄 것 같은 언변에 기대는 것은 아닌가.
물론 그런 인물이 안 보이는 것도 문제일 수 있지만 소위 차악을 선택한다 해도, 위의 조건에 조금이라도 더 부합하는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 수순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주연처럼 보이는 인물을 무대 위로 올려 보내도 공약이 실천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글을 다음으로 미루려다 이번에 내기로 했다. 우리에게도 판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두 달 남짓 남은 지방선거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무엇을 고민하고 연구하며 실천해왔는지를 살펴야 하지 않을까. 눈에 띄지 않더라도 지역사회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감당하며 이웃과 사회를 향한 관심을 넓혀온 사람인지, 정치적 책무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지 말이다.
또한 자신에게 주어질 권력이 시민으로부터 엄중히 위임된 것임을 이해하고, 그 오랜 고민을 더 성숙한 실천으로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도 제대로 찾아보면 어떨까. 결국 우리의 과제는, 거물 정치인과의 인연을 내세우고 공허한 약속을 반복하는 후보들 사이에서 ‘진짜’를 가려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메디컬 드라마를 떠올려볼 수도 있다. 주연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전공과 원칙에 기반해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며 때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내과의 같은 인물 말이다. 세상이 보여주는 화려한 장면 너머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을 찾아내려는 일. 그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기병 한림대의대 내과교수 의료인류학자